국산영화 짙은 에로티시즘 깔린 애정물 쏟아져 나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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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여성의 애정갈등과 애욕의 방황을 그린 영화가 붐이 일고 있다. 이런 류의 영화가 쏟아지게 된 것은 올해 들어 개봉된 여성의 방황을 주제로 한 일련의 영화― 『만추』『밤의 천국』 『애마부인』 『유부녀』등이 흥행에 성공을 거두고 있기 때문. 또 다른 이유는 한동안 국산영화의 주류를 이루었던 문예물영화가 소재의 한계로 관객들로부터 외면을 당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가 그동안 국산영화에선 찾아보기 어려웠던 짙은 에로티시즘이 팬들에게 호기심을 사고 있다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되고있다.
현재 기획되고 있는 애정방황류 영화는 모두 19편. 『정부』『유혹』『짧았지만 행복했어요』(정진우 감독), 『여자와 비』(김성수 감독), 『조용한 방』『하와의 행방』(이원세 감독), 『열애』 『내가 사랑했다』(고영남 감독), 『애인』(박호태 감독),『간역역』(문여송 감독), 『화녀82』(김기영 감독), 『여자의 함정』(이경태 감독), 『산딸기 몸으로 익는다』(김수형 감독), 『26×365=0 2부』『겨울여자 2부』(김호선 감독) , 『겨울사냥』(김기 감독), 『금지된 정사』(이두용 감독), 『날마다 허물벗는 꽃뱀』(강대선 감독) , 『나비의 첫 경험』(김응천 감독) 등이다.
이들 영화의 특징은 지금까지 국산영화의 정석처럼 됐던 남성의 여성편력이 아니라 여성의 남성편력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성의 배신으로 여성이 버림받고 불행해진다든가 하는 내용이 아니라 반대로 여성이 이 남자 저 남자에로 방황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그 밑바닥엔 여성이 그래야만 하는 애정갈등 등의 타당성을 깔고 있고 결말엔 여성이 다시 제 본분을 되찾는다는 교과서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지만 특히 가정을 갖고 있는 여인의 애정갈등과정은 관객들에겐 충분히 흥미를 갖게 하는 요소들이다.
그동안 국산영화는 문예물로서 한동안 성황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고 관객은 다시 등을 돌려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국산영화가 깊이 있게 관객을 포옹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 결과라고 관계자들은 풀이하고 있다.
영화평론가 김종원씨는 『우리 영화가 지식층 관객에게 철저하게 불신당하고 있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이른바 「70년대 작가」들에 의한 원작소설이 70년대 후반 국산영화 중흥의 토양이 된 것은 사실. 그러나 원작의 성가만 믿고 너무 통속적인 영화를 양산해온 것이 결과적으로 관객들을 식상케 한 원인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외국의 경우는 창작영화 (창작 시나리오에 의한 영화)와 각색영화(원작소설을 영화화한 것)가 병행해 영화발전의 기초가 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창작영화가 극도로 위축되고 있는 실정이다.
시나리오작가 이문웅씨는 『영화는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우선되어야 하며 그 밖의 실화나 사건등에서 얼마든지 소재를 얻을 수 있다』며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지 문학은 아니다』 고 원작소설의 영화화를 비판했다.
「여자」의 애정갈등영화가 쏟아지게 된 또 하나의 원인은 불황을 이기기 위한 흥행안전본위의 제작자들 태도 때문이다. 어떤 영화가 흥행성이 높은가를 조심성 있게 따지고 있는데 그러나 이런 류의 영화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올 경우 사회 윤리적인 문제와 관객의 호기심을 계속 끌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다시 대두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다.
한결같이 대중의 기호를 뒤따라가려고 할 뿐 관객을 유도하는 새로운 기획· 소재는 아니라는 것이 영화전문가들의 견해이기 때문이다. <김준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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