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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재임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전국 각대학에서 올해로 임용계약기간이 만료된 교수들이 최근 재임용개약을 체결했다. 사립대학은 아직 숫자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국·공립대학의 경우, 26명이「자의」또는 「타의」로 제의됐다.
이는 대상자 1천2백12명의 2.1%로 6년전·교수재임용제도가 처음 시행될 때에 비하면 「칼날」이 상당히 무디어진 느낌이다. 당시 국·공립대의 전임강사이상 탈락자는 l백68명(사표제출인명 포함)으로 전체대상의 4.5%에 달했고 조교의 경우는 9%가 잘려나갔다.
출범당시 서슬이 시퍼렇던 교수재임용제도가 이처럼 물러진 것은 문교부가『구태여 관여할 필요가 없어 대학의 자율에 맡겼다』고 밝힌 것처럼 이번에는 이부의 직접관여가 없었는데다 대학으로서는 가뜩이나 늘어난 학생을 감당할 교수를 구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문교부의「감」을 잡지 못해 한동안 망설이던 대학들이 고심하다가 내놓은 숫자가 10개 대학에서 교수22명·부교수1명·조교수2명·전임강사 1명이었다.
문제는 탈락률의 높고 낮음에 있지 않다. 연구나 강의능력과는 상관없이 대사회발언이나 대학개혁추장이 임용권자에게 거슬릴 때 탈락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위협을 교수들이 느끼는데 문제가 있다.
「교수사회의 무사안일주의를 불식하기 위한」본래의 취지가 오히려 교수의 적극적인 활동과 교수사회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총·학장재량에 맡겨진」이번의 재임용과정에서도 그같은 예가 없지 않았던 것 같다.
가령 교수의 양심을 걸고 대사의 발언을 했던 S대 N교수의 경우, 타의에 의해 탈락될만한 다른 이유가 뚜렷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달에 이미 재임용작업을 끝내놓고 있는 일부사립대에도 그같은 예가 없지 않다. 또다른 S대 Y교수의 경우, 80년5월 사회의 족벌체제규탄 소용돌이 속에서 교수협의회에 관여했다는 이유때문에 탈락된 것으로 알려졌다.
졸업정원제나 교수의 학생추천서제도에 일반이 우려하는 점도 바로 그런데 있지만, 교수재임용제도가 운영과정에서 본래의 명분을 벗어나 악용되는 탈선을 범하는 것 같아 개운치 앓다.
이제도가 연구와 강의를 통해 진리를 탐구하고 학생을 교육시킨다는 교수의 기능을 활성화하고 자극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임용권자는 물론, 교수들도 납득할 수 있는 재임용기준이 전제돼 있어야한다.
교육공무원의 신분은 혐의 선고나 징계처분을 받지 않는 한, 타의에 의해 면직되지 않도록 법적으로 보장돼 있다. 그런데도 대학교수의 임용만은 65세 정년과 관계없이 일정기간을 정해놓은 재임용제도는 일종의 계약이란 차원에서 이해돼야한다. 계약이기 때문에 당사자인 임용권자와 교수쌍방은 대등한 입장이어야 하고, 그기간을 포함한 계약의 조건은 양쪽이 모두 지켜야한다는 기본전제가 깔려있다.
그러나 이같은 취지나 건제가 운영과정에서 지켜지지 않는다는데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는 것 같다. 본래의 취지대로라면 교수·부교수는 6년(사립은 10년까지 정한곳도 많다), 조교수는 3년, 그리고 전임강사는 2년까지 형의 선고나 징계처분등을 받지 않는 한 권고사직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80년 일련의 대학사태이후에 보듯, 임용권자의 일방적 의사에 의해 많은 교수가 학원을 떠나야했던 것이 현실이다.
「힘있는 쪽」이 필요하면 자의(자의)로 파기할 수 있는 계약은 계약으로서의 설득력이 없다. 그동안 임용권자가 계약기간을 외면하고 권고사직등으로 상대방의 권익을 불법으로 침해하는 일이 없지 않았기 때문에 교수도 임용기간을 무시하고 타교로 전출하거나 직장을 옮 길때 임용권자는 구속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총·학장의 교수전출동의권 시비도 그런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렇듯 계약중에도 멋대로 신분을 박탈하거나 옮겨다닐 수 있다면 이 제도는 있으나마나 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일부대학에서 보듯, 이미 사표를 내 놓은 교수까지 처리를 미루다 재임용때 가서 숫자에 계산, 「탈락」의 불명예를 안겨주는 식이라면 이 제도는 임용권자의 편의로 악용될뿐 교수의 연구의욕을 자극하거나 대학의 질적향상에 도움은 되지 못할 것이다.
객관적이고 타당성 있는 구체적 임용기준이 대학나름으로 제시될 때 교수재임용제도는 제대로 대학사회에 뿌리를 내리게 될 것 같다. 연구하는 교수, 활력에 찬 교수를 보호할 수 있는 운영과정상의 쇄신책이 절실하다.

<오만보사회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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