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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론토=김건진특파원】 북미주의 반한강경파는 "사실상의 북괴공작원"|79년 「세인트·루이스」집회서도 "주한미군 철수」주장|가족찾기 운동구실로 교포들 북괴방문 주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북미주에서 반정부운동이 일어난 것은 꽤 오래전 일이지만 북괴가 반한세력의 일부를 포섭하기 시작한 것은 78년 미 세인트루이스에서 개최됐넌 소위 「한국민주화국민연합 미주본부대회」 (당시 의장 김재준)가 끝난 직후였다.
세인트루이스대회에서는 주한미군문제가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됐는데 대부분의 인사들은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전개하되 미군철수에는 반대한다는 입장(김재준·이상철)을 취한데 비해 임창영계열은 주한미군온 당연히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 격론을 벌였다.
세인트루이스대회를 계기로 북미주반한 세력은 온건파와 강경파 등 두파로 완전히 갈라졌다.
그러나 임창영 등 강경파의 활동도 계속 내부의 견해차이와 주도권 다툼으로 시련을 겪었다.
온건파 반한그룹은 그들의 득표가 민주회복이지 북괴김일성을 따르자는 얘기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최횽희·최덕신 등이 등장, 강경파의 세력이 다시 갈라졌다. 임창영 등 기존 친북괴세력은 김일성과 직접 거래하기보다는 이념적으로 사회주의노선을 추구하려는 경향을 보인데 비해 최홍희·최덕신 등은 아예 북괴공작원과 다름없는 활동을 드러내놓고 전개했기 때문이다.
현재 친북괴세력은 최홍희·최덕신·전충림·선우학원 등이 주축이 된 그룹이 따로 갈라져나와 친북괴활동을 하고있다. 추종세력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이들 핵심멤버들은 각자의 기능을 분담하면서 사실상 북괴의 요원노릇을 하고 있다.
최홍희는 한국의 국내신문들로부터 욕을 먹는 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을 정도다.
최덕신은 미국과 캐나다를 오가면서 어떻게 보면 최홍희의 이용물이 되고 있다. 최덕신 자신도 북한을 드나들었지만 일부에서는 『최덕신은 최홍희가 내세운 얼굴마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충림은 터론토에서 뉴코리아 타임즈라는 한글주간지를 발행, 북괴의 홍보역할을 맡고 있다. 이 주간지는 한국은 깎아내리고 북괴는 찬양, 고무하는 논조로 일관하고 있으며 수시로 『북한에 두고온 가족찾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터론토교포들이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명단과 헤어질 당시의 상황을 적어서 뉴코리아타임즈에 제출하면 전충림은 이 명단을 평양에 있는 소위「해외동포 원호위원회」에 발송, 북괴측이 가족을 찾아서 통보해 오도록 한다. 그 다음 단계는 터론토에 있는 교포들의 북한방문을 주선하는 일이다.
주최측은 해외교포들이 북한에 두고온 가족을 상봉하도록 주선해 주는 것이 얼마나 인도적인 일이냐고 주장하지만 문제는 일단 북한을 다녀온 교포들이 교포사회에서 따돌림을 받고 급기야는 북괴의 농간에 휘말려 들어갈 가능성이 많다는데 있다.
선우학원은 이러한 과격파 그룹의 이론적인 재공자역할을 하고 있다.
터론토에서 가끔 평양을 찬양하는 영화를 상염할 때는 으례 선우학원이 참석해서 북한을 다녀온 교포들과 자연스런 접촉을 갖기도 했다.
터론토 한국총영사관측은 지금까지 북한을 다녀온 교포수를 20∼30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큰 문제는 북한을 다녀온 교포가 몇명이냐에 있는게 아니라 일단 북한을 다녀온 사실이 알려진 교포들은 교포사회와 등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여행자들은 교포사회의 따가운 눈초리를 피하다보니 자연히 여행을 하고 돌아온 그들끼리만 접촉을 하게되고, 북괴는 이런 분위기를 재빨리 이용할 것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방문 교포들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현지교포들은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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