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고위 대표자회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대화는 상대를 전제로 한다. 상대의 의사는 고사하고 그 존재까지 부인한다면 그것은 어미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아니라 한쪽의 주장과 입장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꼴밖에 안된다.
우리의 남북대화제의에 대한 북한측의 반응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식이다.
북한은 우리의 1·22제의와 20개 시범사업안을 일단 거부하고는 그런제안에 대한 세계여론의 지지가 압도적으로 높아지자 2월10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이름으로 남북한인사각각 50명이 참가하는 「남북정치인연합회의」라는 것을 「제안」해 왔다.
그런데 북한은 남쪽대표 50명까지 아예 지명했다. 최덕신·최홍희·배동호등 친북한교포들과 한국에서 정당한 법적절차에 의해 현재 구속중이거나 정치활동의 규제대상이 되어있는 사람들 일색이다.
결국 북한은 우리 정부·정당·사회단체를 협상대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노골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그들의 속셈은 뻔하다. 한국이 수락할수 없는 사람들이 참가하는 「회의」를 제의하여 그것을 한국이 거부하면 세계여론을 향해 통일을 위한 남북대화를 한국이 반대한다고 선전하려는 것이다.
그런 북한의 태도에 접한 우리정부가 이성과 인내심을 갖고 남북한 고위회담을 3월중에 열자고 제의한것은 그만큼 우리의 대화의지가 강렬하고 성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과거에는 남북협상의 대표라면 정부인사위주로 구성되었지만 이번에 우리가 회담대표로 발표한 사람들은 정부, 정당, 평통자문회의 ,학계의 대표를 망라하고 있어 한국인전체의 의사를 대변할수 있는데까지 배려를 하고있다.
평화를 애호하는 모든 나라의 여론이 남북대화를 통한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갈망하고 있다. 우리가 알기로는 중공을 포함한 공산권 대부분의 나라들도 북한의 호전성에 이맛살을 찌푸리고 한반도에서의 분쟁재발을 경계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외면하고 북한이 대화에 반대하고, 대화가 실현되지 않는 책임을 한국에 뒤집어 씌우고 세계의 도처에서 한국을 비방하는 흑색선전에 열중하는것은 시대착오적임을 지적하고 싶다.
지금은 우리가 무방비상태로 있던 50년대가 아니고 사회적 혼란을 경험하던 60년대가 아니라는 것을 평양당국은 잊지 말아야한다.
우리가 비록 좁은 의미에서의 군사력에서는 양적으로 북한에 뒤진다고 해도 한국의 전체적인 국력과 우리의 반공태세와 세계여론으로부터 받는지지에서는 븍한을 압도하고 있다.
북한이 집요하게 거부반응을 보이는데도 우리가 거듭 실천가능한 대북협상제의를 낼수있는것도 이런 총체적인 힘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의 궁지에 몰린 입장을 이해하는 아량과 포용성을 발휘하여 그들의 의사를 최대한으로 반영시킬수있는 여지를 남겨놓고 있는 것이다.
대화거부와 한국에 대한 비방에서 북한이 얻을수 있는 것은 국제적인 고립뿐이다. 우리는 북한이 자폐증환자처럼 고립되고 움츠러들고, 그리고 대화를 두려워하게 되는 사태를 원치 않는다.
우리의 일련의 대북제의는 「득점」을 위한것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선부전따위에서 북한에 이기고 싶은것도 아니다.
우리가 바라는것은 남북한이 상호간의 존재를 협상상대로 인정, 존중하면서 현실적으로 실천가능한 교류부터 시작하는 방도를 논의하여 궁극에 가서는 최고당국자회담, 통일헌법의 제정등으로 민족화합이라는 큰목표에 함께 이르자는 것이다. 북한은 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의 성의있는 제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것을 다시한번 촉구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