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쩔쩔 매는'에볼라 전쟁' 나이지리아는 88일 만에 끝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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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나이지리아는 인구는 1억7400만 명으로 아프리카 최다 인구 국가다. 올해 국내총생산(GDP)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제치고 아프리카 1위로 올라섰다. 전세계 26위 수준이다. 그러나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는 비판에 시달리곤 했다. 무장반군인 보코하람이 여학생 200여 명을 납치한 지 6개월이 넘도록 여학생들의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게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에볼라와의 전쟁에선 확연히 달랐다. 나이지리아와 세계보건기구(WHO)는 20일(현지시간) “나이지리아엔 더 이상 에볼라가 없다”고 선언했다. 마지막 환자가 발생한 이후 바이러스 최대 잠복 주기의 2배인 42일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추가 감염자가 나오지 않았다. 첫 감염자 발생 이후 88일 만의 쾌거다. 인근 라이베리아·시에라리온·기니가 에볼라 창궐로 국가 위기 상태에 빠지고 서구 강국인 미국·스페인이 ‘피어볼라’(공포의 에볼라)란 현상이 나타날 정도로 쩔쩔 매는 상황이라 더 비교가 됐다. WHO는 “에볼라도 퇴치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성공 스토리”라고 ‘칭송’했다.

 사실 7월 20일 국제회의 참석 차 라이베리아 재무부 관료 패트릭 소여가 나이지리아 최대 도시 라고스에 입국할 때만 해도 최악의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이미 발열·구토 증세를 보였던 소여는 에볼라로 숨진 친척의 장례식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속였다. 이 때문에 의료진들은 한동안 말라리아로 여기고 치료했었다.

 결국 에볼라로 확진되는 데 사흘이 걸렸다. 소여는 이후 이틀 만에 숨졌다. 그 사이 공항에서 병원으로 그를 후송했던 차량의 기사도, 그의 치료에 참여했던 의료진 9명 중 4명도 에볼라의 희생자가 됐다.

 만일 에볼라가 2100만 명이 사는 라고스에 퍼진다면 재앙이 불 보듯 뻔했다. 제프리 호킨스 주나이지리아 미국 영사는 “세계인들로선 에볼라와 라고스가 한 문장에 있는 걸(퍼진다는 의미) 가장 듣고 싶지 않았을 것”(영국 가디언)이라고 술회했다.

 나이지리아는 에볼라가 확진되는 순간 가용한 국가 자원을 총동원했다. 에볼라 대처를 담당하는 긴급 대응 센터를 세웠다. 국가 예산도 대거 투입됐다. 소여와 접촉했던 이들을 추적하는 일이 시작됐다. 150여 명이 달라붙었다. 소아마비 퇴치 때 사용했던 GPS 추적 기술도 이용했다. WHO는 이를 두고 “세계적 수준의 유행병 탐지 기술”이라고 평가했다. 이 과정에서 한 간호사가 에볼라에 감염된 채 500㎞를 이동했고 그 과정에서 21명과 추가 접촉한 사실이 드러났다. 최악은 1차 접촉자가 445㎞ 떨어진 원유 도시 포트 하코트로 간 것이었다. 현지에서 의사를 감염시켰고 의사를 통해 526명이 추가 접촉했다. 의사를 치유하겠다며 교회에서 의식을 연 게 화근이었다.

 지난 1일 직접 또는 2차 접촉한 이가 315명이었고 3차 이상 접촉자가 547명이란 사실이 확정됐다. 이미 모두 격리 조치한 상태였다. 그 과정에서 에볼라 추적팀이 체온을 잰 사람만 1만8500여 명이었다. 누구든 추적팀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런 내용을 최근 유럽의 한 전문지에 기고한 나이지리아 연구진은 “전세계적으로 연결된 상황에서 어떤 나라도 에볼라로부터 안전할 순 없다. 신속한 탐지와 강제 개입만이 전파를 차단할 수 있다”고 썼다. 나이지리아에선 결과적으론 28명이 발병했고 그 중 8명이 숨졌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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