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아이디어 주고받으며 이순신 함대의 신호 분석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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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하늘고 학생들이 이순신 함대의 신호연 암호체계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연과 당시 지형 등을 모형으로 제작하고 자신들이 세운 가설을 검토하고 있다.

요즘 교육계에선 융·복합이 화두다. 특목고는 물론 일반 중·고교에서도 학생들의 통합사고력·창의력·문제해결능력 등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융·복합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신입생 선발에서도 이 같은 능력을 평가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대학들은 앞다퉈 융·복합 학과를 신설하고 있고, 입시에선 문과·이과 간 교차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교육부가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개편안을 발표해 융합교육 도입에 본격 나서고 있다.

“현지인과 교육·문화를 교류할 수 있는 해외여행 상품을 만들어라(서울 하나고).”

“연을 띄워 암호를 전달했던 이순신 장군의 신호체계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라(인천하늘고).”

“행주대첩 때 쓰인 변이중 화차의 화포 기술과 모양을 고증하라(서울 마포고).”

요즘 고교마다 통섭 교육의 하나로 시도하고 있는 융·복합 프로젝트 주제다. 학생들은 팀을 이뤄 고문서 해독, 역사적 사건 분석, 기술 실험, 모형 디자인 등 역할을 나눠 수행한다. 교과 지식을 총동원하고 문과·이과 과목을 넘나들며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 과제들이다. 학생들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수학·과학 이론으로 역사적 기록을 고증하거나 국제법 판례를 여러 관점에서 분석하고 오류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는 토론을 벌인다.

흥미 느끼는 분야 새롭게 발견하기도

활동 과정과 결과는 연구 논문으로 쓰거나 세미나에서 발표한다. 학교는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초빙하거나 대학과 연계해 학생들이 수준 높은 실험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인천하늘고 주석훈 교감은 “학생들은 정답이 없는 주제를 역사적·과학적·사회적 측면에서 다양하게 접근하고 이 과정에서 지식을 통합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온몸으로 체득한다”며 “이는 시험용 공부와 차원이 다른 공부”라고 강조했다.

고교에서 융·복합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김평원(인천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연구 주제를 정해 탐구활동을 하고 그 과정을 논문으로 쓰고 발표하는 경험은 지식을 다루는 기술을 연마하고 학업에 필요한 역량을 키우는 데 효과적”이라며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학생 대부분이 학습능력이 향상돼 대입에서도 좋은 결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문과·이과·미술 등 서로 다른 전공의 학생들이 공통 주제를 놓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지식을 체득해 가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는 학습 체험이 된다고 그는 설명했다.

해마다 융·복합 주제를 다루는 대회와 캠프를 진행하는 하나고 이효근 기획홍보부장은 “학생들은 역할을 나눠 수행하면서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분야를 새롭게 발견하고 변수를 만나면서 다양한 문제해결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경험은 적성과 인성 등 학습 외적인 부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융합이 입시지형 바꿔

융·복합 바람이 일으키고 있는 변화는 입시에서도 감지된다. 영재학교·과학고·영재교육원 등 영재교육기관들은 융합형 인재 선발에 초점을 맞추고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 융합적 사고력을 평가하는 문항 출제를 늘리고 있다.

‘디자인은 예술인가, 과학인가?’(한국과학영재학교 2014학년도 기출), ‘기술·문화산업·디자인 중 우리나라가 집중 발전시킬 항목은?’(경기과학고 2014학년도 기출)와 같은 학문 융합형 문제가 심심치 않게 출제된다. 자기소개서 심사, 면접고사에서 다양한 주제로 탐구활동을 꾸준히 해 온 학생들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와이즈만 이미경 영재교육연구소장은 “요즘 입시에서는 지원자의 지식 수준을 묻기보다 수학·과학적 지식을 적용해 주변의 현상들을 관찰·분석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문제들이 주로 출제된다”며 “과학·기술 관련 독서를 하면서 실생활 연계 문제, 교과 간 융합 문제, 화학·물리·생물 등 과학 분야별 융합 문제에 집중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천하늘고 학생들이 신호연의 암호체계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대학들도 이에 발맞춰 융·복합 학과를 신설한다. 기존 학과들도 융합을 문패로 내걸거나 다른 학과들과의 통합을 꾀하고 있다. 문과·이과 간의 교류도 확대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정시모집 일반 전형에서도 연세대 인문계열, 숙명여대 통계학과, 광운대 건축학과 등이 문·이과 간 교차지원의 폭을 넓혔다. 경희대 한의예과, 이화여대 의예과, 원광대 치의예과 등 의대도 인문계열 수험생의 지원을 허용했다. 유웨이중앙교육 이만기 평가이사는 “대입 전형에서 문·이과 교차지원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며 “이 같은 변화는 향후 신입생 선발 기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글=이혜진 객원기자 , 사진=인천하늘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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