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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기 찾자" 봉우리 높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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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 강원도 강릉시 강남동 주민들이 16일 모산봉 산봉우리를 1m 높이기 위해 흙자루를 산 정상으로 옮기고 있다. [연합]

마을의 정기를 되찾기 위해 주민들이 조선시대에 깎인 것으로 전해진 산봉우리 높이기에 나섰다.

16일 오전 10시 강릉시 강남동 인근 야산인 일명 모산봉(母山峰.해발104m). 600여 명의 주민과 군 장병이 산 아래에서 정상까지 400여m의 등산로 양쪽에 지그재그로 선 뒤 흙이 담긴 자루를 릴레이식으로 날랐다.

이날 행사는 강남동 향우회.새마을 부녀회 등 강남동 10개 지역단체 회원과 주민들이 인근 군부대의 협조를 받아 당초의 산봉우리 높이보다 1m 정도 낮아진 모산봉을 원래 높이대로 복원하기 위해 마련한 것.

주민들은 인근 아파트 건축 현장에서 나온 흙 50여t을 소형 자루 1200여 개에 담아 10여 평 넓이의 산정상에 갖다 부었다. 이날 오후 2시까지 네 시간 동안 주민들은 우선 4평 정도를 1m 높이로 올렸다.

나머지 부분은 산봉우리로 향하는 등산로에 흙을 담은 자루를 놓아두고 주민들이 등산하면서 한두 개씩 갖고 올라가 메우기로 했다.

심상렬(47) 강남동장은 "지역 주민들과 등산객들이 수시로 흙을 뿌리고 발로 다지면 토사 유출 우려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봉우리가 원래 모습대로 복원되면 내년에 3억5000여만원을 들여 산 정상에 정자를 비롯, 허리돌리기.턱걸이장 등 휴식.체육시설을 갖춰 시민공원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날 '모산봉 1m 높이기'운동을 벌인 뒤 건너편 등산로를 따라 하산하는 '모산봉 산책로 걷기 대회'도 열었다.

지역 주민들에 따르면 모산봉은 강릉의 안산(案山.집터나 묘 앞자리에 앉아 질병 등 각종 재앙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산)인 명산으로 밥그릇을 엎어 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밥봉', 볏짚을 쌓아 놓은 것 같아 '노적봉', 인재가 많이 배출돼 '문필봉'이라고도 하는 등 다양하게 불려 왔다. 그러나 조선 중종(中宗) 때 강릉부사(府使)를 지낸 한급이라는 사람이 강릉에서 큰 인물이 나는 것을 시기해 모산봉 꼭대기를 석자 세치(1m) 깎아내렸다고 구전(口傳)되고 있다.

민속학자 김기설(57)씨는 "한급이 강릉부사로 부임한 뒤 지역 유림으로부터 무시와 멸시를 당하자 그 앙갚음으로 모산봉 정상을 훼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당초 해발 104m였던 모산봉이 103m로 낮아졌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이 봉우리를 원상복구, 강릉의 옛 정기를 되찾아 인재를 배출하고 각종 재앙을 막자는 취지에서 이 운동에 발벗고 나선 것이다.

강릉=홍창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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