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유령'서 전율의 팬텀 연기 '브래드 리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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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0일 뚜껑을 연 브로드웨이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초반 인기 몰이가 거세다. 특히 팬텀 역을 맡은 배우 브래드 리틀의 연기와 노래, 외모가 브로드웨이 본바닥에서도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A급'임이 밝혀지면서 티켓 판매가 늘고 있다. 13일까지 팔린 티켓은 모두 10만 여장. 9월 1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80여 일간 이어지는 공연 일정 중 채 일주일도 넘지 않은 시점에 전체 티켓 20만장 중 절반이 팔려나간 것이다.

여성팬들의 가슴을 가장 날카롭게 후벼파는 대목은 공연 종료 직전 크리스틴이 팬텀에게 기습 키스하는 장면이다. 목숨보다 소중한 사랑(크리스틴)이 자신을 배신하자 복수심에 사로잡혔던 악한(惡漢) 팬텀은 생애 처음으로 경험한 단 한 번의 부드러운 키스에 팔다리를 사시나무처럼 떨어대다 크리스틴의 연인 라울을 살려준다. 뮤지컬 동호회 인터넷 게시판, 공연 홈페이지 등에는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공연 후기들이 올라오고 있다.

천재적인 작곡능력을 타고났지만 흉측한 외모 때문에 평생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다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자 편집광적으로 빠져드는 괴물. 브래드 리틀의 실감나는 팬텀 연기의 비결은 고스란히 자신의 체험 때문이다. 리틀은 홈페이지(www.bradlittle.com)에 대학진학을 포기해야 할 만큼 극심했던 난독증(글을 읽을 수 없는 증상) 때문에 고통받았던 과거를 소상하게 밝혀 놓았다.

1964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레드랜즈에서 태어난 리틀은 연극영화과 대학교수였던 아버지 덕택에 어렸을 때부터 무대와 익숙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이 되도록 'house'와 'horse'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난독증이 심했다. 지금은 난독증이 눈과 두뇌 사이의 의사소통 문제 때문에 글을 읽지 못하는 증상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린 리틀에게 난독증은 넘기 어려운 거대한 산이었다. 정확한 병명도 모른 채 자신에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여겼고, 절망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는 "나는 팬텀 연기를 하면서 난독증의 경험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친구들로부터 조롱당하고 두들겨 맞고 버려지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난독증으로 인한 자신의 고통에 비추어 외모에서 비롯된 팬텀의 고통을 무대 위에서 연기한다는 것. 음악적 재능을 타고 났다는 점에서도 리틀은 팬텀과 닮은 꼴이다. 비상한 기억력과 노래를 한 번 들으면 바로 따라할 수 있는 비범한 능력, 가창력 등을 타고난 것.

중학교 3학년 때 자신의 증상에 대해 정확하게 알게 되면서 바깥 세상에 마음의 문을 연 리틀은 스무살 때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지금까지 수십편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96년 처음 팬텀역을 맡으면서 역시 뮤지컬 배우인 아내의 충고에 따라 아픈 과거를 세상에 공개했다. 공연 문의 02-580-1300.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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