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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밖' 대학로 소극장 170곳 … 비상구 막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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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 대학로 A소극장의 출입구. 지하 1층 공연장과 지상을 연결하는 통로는 이 문과 계단이 전부다. 70석 객석을 채운 관객들과 배우·스태프 등이 비상 상황에서 한꺼번에 빠져나오기엔 너무 좁은 공간이다. 공연법상 ‘등록’이 필요 없는 객석 100석 미만 소극장은 안전 관리에 더욱 취약하다. [김상선 기자]

객석 70석 규모, 지하 1층에 자리 잡은 서울 대학로 A소극장은 출입문이 하나다. ‘비상구’이기도 한 그 문은 좁은 계단을 통해 지상으로 연결된다. 공연 전 직원이 “비상시 직원의 안내에 따라 대피하라”고 했지만, 불이 나면 도망갈 곳을 찾기 힘들어 보였다. 소화기도 눈에 띄지 않았다. 건축법상 주 계단 이외의 탈출구가 있어야 하지만, 탈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지하층이니 창도 없다. 현재 공연 중인 작품엔 성냥불 켜는 장면이 나온다. 자칫 불씨가 잘못 튀기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사회에 안전불감증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대형 참사가 끊이지 않음에도 ‘설마 괜찮겠지’란 생각이 만연해 있는 듯하다. 다수의 관객이 제한된 공간에 모이는 공연장은 특히 위험하다. 공연장에서 일상적으로 발견되는 안전불감증 실태를 공연 관계자 10명의 증언을 통해 정리해봤다. 이들은 소방점검 강화, 관계자 의식 개선, 관련 법령 개정 등이 시급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소극장은 안전 사각지대=현재 건축법·소방법 등에 따르면 면적 300㎡ 이하 공연장은 공연시설로서의 소방 관련 규제를 받지 않는다. 서울 대학로에만 이런 ‘규제 밖’ 소극장이 170∼180곳에 달한다. 이 중 70∼80곳은 아예 소극장으로 등록조차 안 돼 있다. 소극장에선 비상구 찾기부터 어렵다. 무대 뒤나 커튼 속에 비상구를 숨겨두거나, 연극의 암전 장면 효과를 높이기 위해 비상구 불빛을 검정 테이프로 가려놓는 곳이 많다. 공연 시작 전 비상상황 대처법을 안내한다며 엑스트라 배우가 나와 “불이 나면 안내원의 유도에 따라 침착하게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안내원은 없어요”라는 식으로 장난스럽게 진행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안전 비용부터 줄이기=안전은 돈과 직결된다. 실내체육관 하루 행사 보험료가 3000만원 정도다. 영세 공연 기획사들은 엄두를 내기 힘든 액수다. 안전요원을 쓰지 않는 것도 인건비 절감을 위해서다. 게다가 안전요원을 파견하는 전문 업체도 몇 개 없다. 10월 첫째 주만 해도 전국에서 1200여 개 행사가 열렸다. 이를 감당할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지방 공연장의 경우 더욱 취약하다. 비상구나 화재 대비 시설이 미비한 곳이 많다. 서울의 공연장에 비해 가동률이 낮아 문제가 쉬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경우에 따라 안전요원 역할을 대신해야 할 직원들의 안일한 자세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지자체·기업에서 진행하는 무료 행사는 특히 위험하다. 동네 주민과 어린아이까지 다 모여 통제가 어렵다. 판교 환풍구 사고에서 보듯 아이돌 스타가 나오는 행사는 위험도가 더 상승한다. 예전엔 안내요원들이 소리도 지르고 몸으로 막기도 했는데, 최근엔 관객 몸에 조금이라도 손이 닿으면 “성추행이다. 영상을 찍어 올리겠다”며 항의하는 경우가 많아 통제가 힘들다.

 ◆추락·감전 위험 높아=2011년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한 지휘자가 오케스트라 피트(무대 아래쪽 악단석)로 떨어져 사망했다. 공연장 측은 “피트가 내려가 있다는 조명이 켜져 있었다”고 했지만 지휘자는 이를 보지 못한 것이다. 이 공연장은 사고 후 펜스를 설치했다. 하지만 다른 공연장에서 무대 밑에 위치한 오케스트라 피트는 여전히 위험지대다.

 음향·조명 기기 등은 감전 사고에 취약하다. 설비가 부족한 지방 공연장이나 야외 공연장의 경우 각종 기기를 빌려 쓴다. 렌털회사 직원이 기기를 임시로 설치해 작동하다 보니 누전·감전 위험이 커진다. 비 오는 날 야외 공연은 전기 기기나 배선이 물에 닿을 수 있어 더욱 위험하다. 출연자가 마이크 잡는 동작부터 조심해야 한다. 안전 문제를 고려하면 공연을 취소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강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글=이지영·김호정·김효은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도움말(가나다순)=김대진 수원시향 상임지휘자, 김도연 PRM 실장, 문성식 플레이뉴스 편집장,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송재영 빈체로 부장, 엄용렬 뮤지컬 작곡가, 이세환 소니뮤직 차장, 장일범 음악평론가, 전필규 미러볼뮤직 이사, 조수곤 ㈜연극열전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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