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당한 사우디 국왕 전처 "내 입 막으려면 1조원 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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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사우디아라비아 왕족의 사치스럽고 은밀한 사생활이 세상에 공개될 전망이다. 파드 국왕(82)의 전 부인 자난 하르브(57.사진)가 거액의 생활비를 청구하는 소송을 영국에서 제기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이브닝 스탠더드 신문 등은 '파드 국왕을 겨냥한 전처의 복수극'이라고 14일 일제히 보도했다. BBC방송도 이날 "영국의 항소법원이 1심의 비공개 명령을 번복하고 공개재판을 벌이기로 결정했다"며 "사우디 왕가의 비밀이 드러날 판"이라고 전했다. 공개재판 결정을 받아낸 하르브는 팔레스타인 출신 기독교인으로 파드 국왕의 세 번째 부인이었다. 30여 년 전 이혼당한 뒤 영국에 거주하며 국적을 취득했다.

생활비 지급소송을 낸 것은 2004년 1월. 1심 소송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국왕의 사생활을 보호해 달라는 사우디 변호인단의 요청이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소송 취하를 위한 합의가 어려워지자 하르브의 변호인단은 '공개재판 카드'를 꺼냈다. 알자지라 방송은 소식통을 인용해 "하르브 측이 원하는 금액은 10억 달러(약 1조원) 전후"라고 전했다. 1982년 사우디의 왕족이자 무기상인 아드난 카쇼기의 전처가 소송으로 8억 달러(약 8000억원)를 받아냈던 것을 이 소식통은 언급했다. 하지만 왕실 변호인단은 "거액의 생활비를 이미 여러 차례 지불했으며 2001년에도 국왕 사생활을 발설하지 않는 조건으로 상당한 규모의 합의금을 지불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노환으로 투병 중인 파드 국왕은 이미 10년 전 이복동생인 압둘라에게 국정을 맡긴 상태다.

그의 재산은 약 58조원에 이르고 국내외 여러 곳에 왕궁과 저택을 소유하고 있다. 보잉 747 전용기와 대형 요트 2대를 타고 다니는 호화생활을 해 왔다. 왕가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오일달러를 써 온 사우디 왕이 이번에도 전처의 입을 막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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