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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과학의 만남 '배아줄기세포' 생명이냐 아니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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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대 황우석 석좌교수는 성체 줄기세포로 치료하지 못하는 질환의 치료용으로만 복제 배아 줄기세포를 연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15일 서울 명동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주교관에서 가진 황우석 교수와 정진석 대주교의 회동 후 황 교수의 대변인 격인 안규리 서울대 의대교수가 회동 결과를 밝히면서 이같이 전했다.

▶ 15일 오후 서울 명동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관을 방문한 황우석 교수(左)가 정진석 대주교를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연합]


즉 성체 줄기세포를 이용한 질병 치료기술이 개발된다면 복제 배아 줄기세포로는 그와 관련한 연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성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복제 배아 줄기세포를 이용한 연구를 중지할 수 없다"는 것이 황 교수의 뜻이라고 안 교수는 설명했다. 이는 그동안 "복제 배아는 생명으로 볼 수 없다"며 연구 방향에 어떤 수정도 할 뜻이 없다고 밝혔던 황 교수가 이날 만남 후 한 발짝 물러선 것으로 해석된다.

생명과학의 윤리성을 둘러싸고 그동안 이견을 보인 종교계와 과학계의 두 '수장(首長)'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은 이날 대화는 한 시간가량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날 만남은 정 대주교가 지난 11일 "황 교수 연구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촉구하는 강론 자료를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미국에 있던 황 교수는 "종교계 어른들의 가르침을 기꺼이 경청하겠다"고 밝혀 만남이 성사됐다. 서울대교구 측은 대담 뒤 '질서에 대한 존중-과학자의 양심'이란 제목의 발표문을 내놨다.

◆ "자세 가다듬는 계기로"=대담의 분위기는 좋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황 교수가 "오늘의 대화를 기술 만능주의에 빠지기 쉬운 과학자의 자세를 가다듬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문을 열자 정 대주교는 "난치병 환자 치료 연구에 헌신한 황 교수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정 대주교는 "할 수 있다고 해서 무엇이나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는 지난 4일자 천주교 주교회의 성명서를 재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발표문에는 '어떤 경우에도 과학자는 인간의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데 (두 사람 사이에) 전혀 이견이 없었으며, 향후 과학계와 종교계의 상호 이해에 귀중한 계기가 됐다'는 매우 포괄적인 설명이 담겼다.

◆ 여전한 이견=그러나 생명의 시작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대한 이견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정 대주교는 복제 인간 배아를 활용해 난치병 치료제를 만드는 일은 자칫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 대주교는 "천주교가 황 교수의 모든 연구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난치병 환자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며 대안으로 성체 줄기세포 연구를 제시했다. 장기세포로 분화되기 직전의 원시세포인 성체 줄기세포는 사람의 골수나 탯줄혈액 등에서 채취한다.

이에 대해 황 교수는 성체 줄기세포 연구가 배아 줄기세포 연구의 한계를 메워줄 수 있으나 양쪽 모두 아직 이렇다할 연구 성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두 가지를 모두 연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정 대주교에게 말했다.

대담의 쟁점은 역시 '배아를 생명으로 보느냐, 안 보느냐'였다. 천주교에서는 일단 수정이 이뤄진 순간부터 생명이라고 보지만, 황 교수를 비롯한 배아 연구자들은 배아가 여성의 자궁에 착상돼 사람의 모습을 갖추는 단계부터 생명으로 보는 것이다. 황 교수는 "배아의 또 다른 종류는 난자 안에 있는 유전 정보가 들어있는 핵을 제거하고, 그 대신 줄기세포를 만들려는 사람의 살에서 떼어낸 세포를 집어넣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것이 바로 황 교수가 연구하는 복제 인간 배아다. 천주교에서는 이것도 생명의 시작으로 보는 입장이다.

◆ 그래도 남는 문제=정 대주교는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도 수단이 악해서는 안 된다'는 로마서 3장8절을 인용하면서 배아 줄기세포 연구는 장기적으로 복제 인간의 출현을 가져온다는 천주교의 우려를 전했다. 그러나 황 교수는 복제한 배아의 경우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 가능성이 전혀 없어 생명으로 발전할 근거가 없다고 답변했다.

결국 두 사람의 만남은 '생명윤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요구와 '과학기술적 해명'을 교환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정 대주교로서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한국 주교회의가 반대 입장을 표명한 상황에서 인간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권장할 수는 없다. 황 교수 역시 "꾸지람을 들으러 왔다가 가르침을 받고 돌아간다. 말씀 자체가 은혜였다"고 말했지만 국민적 기대를 모으고 있는 연구를 포기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조우석 문화전문기자,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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