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14)|대낮 공원에서「토플리스」차림 일광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은 호수와 운하에 뜬 도시다. 그래서「북국의 베네치아」란 이름이 붙어있는 모양이다.
스톡홀름이란 낱말 자체도 교량(다리)으로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도시전체가 굳은 암반 위에 앉혀 있기 때문인지 스톡홀름은 스칸디나비아의 여러 도시에 비해 현대적인 고층건물이 많이 눈에 띄었다.

<소문뿐인 프리섹스>
밤에는 운하의 물결에 불빛이 아롱다롱 눈부시게 비쳐서 한결 아름다운 야경을 연출하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 아래 완벽한 사회보장제도로 풍요한 국민생활을 누리는 나라여서 그런지 시민들의 발걸음이 활기차 보였다.
하지만 스웨덴이「프리섹스의 나라」라는 물정은 아무 데서도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호텔에 여장을 풀고 우선 밤거리를 거닐어봤다.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이들도 다른 나라에서처럼 자연스레 팔짱을 끼고 걷고 있을 뿐 별스럽지가 않았다.
호숫가 벤치에 앉아 밀어를 나누는 남녀도 무엇하나 이상하지 않았다.
술집에도 가 보았다. 요란스럽지 않고 여유 만만하다. 우리나라 주석풍경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스웨덴 국민들의 성교육을 맡고 있다는 섹스영화관에도 들어갔다.
기성도 괴태도 없다. 그저 애정영화를 보듯 담담하게 앉아 있었다. 입장객의 반은 관광객들이지만 이들에게서도 역시 야릇한 눈빛은 찾아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프리섹스란 말인가….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 때문에 의문이 더했다.
이튿날은 스웨덴에서 화명을 날리고 있는 서양화가 한봉덕 화백의 안내를 받아 밀레스 가든에 갔다.
스톡홀름 동북쪽에 위치한 리밍과 섬에 있는 야외조각 공원이다.
이곳은 스웨덴이 낳은 조각의 거장「카룰·밀레스」가 자기 집 물에 작품을 진열해 놓고 1906년에 처음 일반에게 공개, 그가 죽은 후 국가에 헌납한 일종의 기념관이었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높다란 대지에「밀레스」의 훌륭한 조각품들이 배치돼 있다.
집안에는 그가 컬렉션한 현대예술품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어 관람객의 눈을 끌었다.

<집안에 만든 부부 묘>
「밀레스」는 주로 분수조각을 많이 남긴 세계적인 조각가다.
운보는「밀레스」가 부처님 손바닥에서 노는 인간의 모습을 조각한 작품을 보고『손오공이다』고 손을 치켜들었다. 그러면서 운보는『「밀레스」가 동양철학에 심취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며 동양철학의 세계 성을 강조했다.
「밀레스」의 집엔 부부 묘가 있었다. 한국 같으면 집안에 묘를 만든다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밀레스」는 자기 집에 엄숙하게 부부 묘를 만들어 놓았다.
운보는 이게 아주 인상적이었던지 주위를 맴돌면서 떠날 줄을 몰랐다.
운보는 차를 타고「티엘」미술관에 가면서도 연신 부부 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어느새 우향(박래당)에 대한 생각에 젖어 있는 것 같았다.
「티엘」미술관은 은행가「티엘」집이었는데 그가 친구인「카롤·란슨」이란 화가를 그의 사저에 초대, 살게하면서 그린 작품을 진열해 놓았다.「란슨」은 이 집에 살면서「티엘」부인을 소재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란슨」은 또 친구인「뭉크」도 불러들여 여기서 같이 작품을 해「뭉크」의 그림도 많았다.
「티엘」미술관에는「란슨」「뭉크」의 작품 말고도 세계 저명 작가의 그림·조각품이 즐비했다. 「로앵」의 조각품만도 5,6점을 전시하고 있었다.

<현지 신문과 인터뷰>
바닷가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들고 스웨덴 현대미술관을 찾았다.
작품을 시대적으로, 경향에 따라 분류 진열해서 알아보기 쉬웠다. 실험작품도 대단한 것들이 많았다. 작가의 용기를 관장이 받아들인 것이다. 이곳 관장의 이런 공로가 인정되어 프랑스 퐁피두 미술관장으로 스카우트돼 갔다고 한다.
운보는 스웨덴 현대미술관을 보고 나와『우리나라는 언제 현대미술관을 지어서 외국작가의 작품을 진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미술관건립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오후에는 그 유명한 하가공원에 갔다. 남녀가 해수욕장처럼 옷을 훌훌 벗고 비키니차림으로 잔디밭에 드러누워 있었다.
해수욕이 아닌 일광욕을 하는 숲이다. 벌거숭이가 되다시피 한 일광욕 객들이 공원을 메우고 있다.
아무 부끄럼도 없이 노브러로 숲속을 거니는 아가씨들이 많았다.
그야말로 요지경 속이다.
운보는 이게 신기한 듯 스케치를 하다가 무엇에 자극을 받았음인지 자기도 웃통을 벗고 잔디밭에 누웠다.
저녁은 한봉덕 화백이 초대, 오랜만에 구수한 된장찌개에 쌀밥을 배불리 먹었다.
다음날은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는 공보관 김준길 형의 주선으로 그곳 신문들이 운보를 인터뷰했다.
인터뷰가 끝난 후 나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스웨덴 기자에게 프리섹스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는 한마디로『스웨덴을 프리섹스의 나라로 보는 것은 여권이 신장되어있기 때문이다』 고 대답했다.
나는 이 대답만으로는 수수께끼를 풀 수 없어 구체적인 사례를 요구했다.
스웨덴 기자는『남편이 있는 부인이 다른 남자와 마음이 맞아 연애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면 여자의 뜻에 따라 사랑을 속삭일 수 있다』고 예를 들었다.·
요컨대 선택권이 여성에게 있다는 얘기였다. 그렇다고 결코 성이 문란하지 않다는 것. 어디까지나 교제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지 성을 돈으로 살수 없다는 엄숙한 윤리가 뒷받침 하고 있었다.
남을 속이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 스웨덴 민족성이 결코 거짓 사랑은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글=이규일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