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쌀 협상전략만 노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김종윤 경제부 기자

"청문회를 보신 국민께서 관세화(시장 개방) 유예와 관세화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어느 게 유리한지 궁금하다고 전화를 주셨습니다. 이걸 설명해 주세요."

13 ~ 14일 국회에서 열린 쌀 협상 청문회는 과거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TV나 인터넷으로 청문회를 지켜 본 국민이 전화로 한 질문에 대해 청문회에 참석한 국회의원과 장관.교수 등 증인들은 성실히 답변하려고 노력했다. 고함을 지르거나 증인을 죄인시하는 등의 구태도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인도와 이집트산 쌀을 식량 원조용으로 수입하기로 한 배경 같은 새로운 사실을 일부 밝혀내는 등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아쉽고 미진한 점도 많았다. 이번 청문회는 쌀 협상 이면 합의 유무를 따지는 자리였다. 정부가 쌀 시장을 열지 않기 위해 배나 사과 등 다른 품목의 시장을 양보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파헤치는 게 핵심이었다.

하지만 의원들은 스스로 제기한 이면 합의설을 입증하지 못했다. 충분한 자료 분석이나 관계자 취재 등을 통해 정부 주장을 압도하는 논리를 펴는 의원도 드물었다.

"정부가 이면 합의가 아니고 부가 합의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면 합의를 인정하라"는 식으로 다그치기만 해선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요컨대 이번 국정조사와 청문회에선 의혹을 풀기는커녕 우리나라가 미국.중국 등과 맺은 양자 협상 내용이 공개돼 우려만 커졌다. 각국과 맺은 협상 내용은 비밀로 하는 게 국제 관례다. 그 내용이 공개됨으로써 한국과 불리한 협약을 체결했던 다른 국가가 향후 통상협상에서 형평성을 내세워 무리한 공세를 펼 수도 있다.

의원들은 비밀자료를 열람한 뒤 보안을 지키겠다고 합의했지만 이것도 물거품이 됐다. 일부 의원은 비밀문서를 보고 "쌀 협상에서 미국에 시장점유율을 보장해 줬다"고 주장해 이 약속을 어겼다.

청문회장에서 "결국 우리 협상 전략만 전 세계에 알린 꼴이 됐다"고 반성하는 한 의원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김종윤 경제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