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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퍼런 생의 작두, 푸닥거리는 끝나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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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 7월 타계한 김종철(1947년생·사진) 시인의 유고(遺稿) 시집 『절두산 부활의 집』(문학세계사)이 나왔다. 그가 세상을 뜬 직후 공개된 ‘절두산 부활의 집’ 등 유고시 세 편 외에 그동안 써두었으나 발표하지 않았던 30여 편 등을 합쳐 모두 80편이 실렸다.

 지난해 췌장암 진단을 받은 시인은 올 들어 회복하는 듯했으나 끝내 세상을 등졌다. 때문에 시집의 여운은 클 수밖에 없다. 특히 전체 5부로 나뉜 시집에서 투병시를 모은 1부가 눈길을 끈다.

 첫 머리에 실린 ‘유작으로 남다’에서 시인은 암병동의 하루를 ‘실컷 피를 빤 아침 하나가/냉담한 하느님과 광고를 믿지 않은/자들만 분리수거해’ 가는 것으로 묘사한다. 시인 자신은 ‘생의 고랑대’에 걸리는 ‘내장과 비늘을 제거한 생선’, ‘체면이 기도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분노하고 절망하고 타협하고’ 결국 순명(順命)하는 신세로 그린다.

 1부의 시편들이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치료 경과에 따라 여유 있는 순간도 있었을 게다. ‘힘내, 파이팅!’ 같은 격려 문자를 받고는 ‘나는 종목도 없는 운동선수’, ‘이길 수 없는 경기에만 나오는 선수’라고 너스레를 떠는 대목이 ‘오늘의 조선간장’에 나온다.

 ‘큰 산 하나 삼키고’에서 ‘큰 산’, ‘만신(萬神)’은 죽음으로 이해된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순간, 지나간 삶은 시퍼런 생의 작두 위에서 한바탕 푸닥거리로 다가온다.

 문정희 시인은 추천글에서 “십자가처럼 처연한 고통의 시편들”이라 평했고, 정호승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거룩한 미사를 드린 듯하다”고 밝혔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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