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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충성도를 주로 채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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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주총시즌을 앞두고 기업임원들과 고참부장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논공행상에 대한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일부기업에서는 주총을 시작했으며 보름남짓 후에는 본격적인 주총시즌이 닥친다.
사장 등 최고경영진을 포함한 중역들과 고참부장들은 불안과 설렘 속에 사주의 일거수 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풍문에도 귀를 기울인다.
발표를 기다리는 수험생들의 초조와도 견줄만하다.
기업의 세계는 냉혹하여 모든 결과를 실적으로 따진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필수요건이며 운도 따라야 한다. 기업의 중역은 일선사단장이나 마찬가지다. 그것도 끝없는 전쟁을 치르는 지휘관이다.
기업체에서 이사로 승진하는 것은 군에서 장성으로 승진하는 것에 비유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치열한 입사경쟁을 거쳐 선발된 후에도 일류대기업의 경우 15∼20년이 지나야 스타탄생의 기대를 걸 수 있다.
물론 그 동안 큰 실수가 없어야하지만 요즈음같이 성장보다는 안정을 다지는 풍토에서는 특출한 능력과 피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이사가 되면 많은 보수와 좋은 대우, 또 상당한 권한을 지닐 수 있지만 책임 또한 무척 무겁다.
삼성·현대·대우·럭키 등 일류대기업의 이사는 월 평균 1백만원이 넘는 보수 외에도 상당한 판공비·섭외비를 쓸 수 있다.
또 승용차와 여비서도 따르는 등 격이 달라진다.
그러나 영업실적이 나쁘거나 회사에 대한 충성도(?)에 의심을 받게되면 하루아침에 자리를 내놓게 되거나 강등되는 예도 드물지 않다.
심판의 날이 박두한 주요그룹의 임원진 이동을 전망해본다.

<삼성>
예년 같으면 이병철 회장이 연말연시를 일본에서 보내면서 최고경영진에 대한 인사포석을 구상, 이회장이 귀국하면 대충 윤곽을 점칠 수 있었다.
그러나 올부터는 중역급에 대한 인사를 주요사장 7인으로 구성되는 인사위원회에서 논의, 객관적 채점표를 작성키로 함에 따라 아직 구체적인 인사내용이 새어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삼성은 1인1사장제를 채택, 책임경영제를 통한 조직의 활성화롤 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년의 예를 보면 삼성인사는 2월 10일께는 대체로 밝혀지는 데 금년엔 큰 이동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석유화학 사장이 공석인데다 겸직사장들이 많아 1인1사장제를 채택할 경우 승진이 많을 것 같다.
특히 삼성은 조직의 활성화와 더불어 임원 승진을 억제하지 않는 방침이어서 연쇄승진이 예상된다.
그 동안 실무를 익히던 고문들이 사장 등 중요직책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
현대건설·현대중공업 등 주력기업이 대부분 비공개회사로 주총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데다 지난해 8월부터 수시로 사장 등 최고경영층에 대한 인사이동을 단행한 바 있다.
따라서 큰 폭의 이동은 없을 듯. 현대는 지난해 8월 이명박 현대건설 사장이 겸임하고있던 한라건설은 장우주 대한알루미늄사장에게, 인천제철은 정몽필씨(정주영회장 장남)에게 넘기는 등 1인1사장제를 도입한바 있다.
정몽필 사장을 보좌하기 위해 박경진 인천제철대표이사전무를 대표이사부사장으로 승진시켰으며, 9월에는 현대중공업 상무 정몽준씨(정회장 6남)를 그룹종합기획실상무로 전보해 경영전반을 익히도록 했다.
정몽준씨는 박사학위를 위해 여름에 도미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그룹종합기획실 전무 이현태씨를 동 부사장에, 동 부사장 김위신씨를 건설 해외담당 부사장으로 전보했다.
이밖에도 현대엔진 전무 김형벽씨를 동 부사장으로, 전 기획원 투자진흥국장 강흥구씨를 중전기전무로, 전 조달청 기획관리관 이균재씨를 건설전무로 발령한바 있다.
12월에는 아산재단 사무국장겸 인력개발원장 송윤재씨화 아세아상선 대표이사전무 조백제씨가 자리를 맞바꾸었으며 1월에는 그룹통합 구매실을 신설하면서 건설상무 정장현씨를 전무로 승진시켜 실장직을 맡꼈다.
현대는 그룹내 기업들을 성장성·수익성·목표 달성률 이라는 3인 채점표에 따라 성적을 매겼는데 건설·중공업·미포수리조선소 등이 좋은 반면 중전기·엔진·자동차·차량·동서산업 등의 실적이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대우>
지난 연말 대우개발과 대우실업을 대우로 통합하면서 최고경영진에 대한 인사이동을 단행했기 때문에 정기 주총에는 큰바람이 일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전 대우실업사장 박세영씨가 1월말 수학연수차 도미한데 이어 도미수학중인 김용원 부사장이 2월에 귀국할 예정.
김부사장이 그대로 부사장 직책을 가질 것인지 사장으로 승진할 것인지는 아직 미정이지만 대우에서 해외건설분야를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통합사인 대우는 이우복 부회장이 관리전반을, 이경묵 사장이 무역을, 김동규씨가 국내건설을 맡고있으며 해외건설은 김우중 회장이 직접 나서고 홍성부 부사장 등이 보좌하고 있다.
해외 출장중인 김우중 회장은 아직 인사포석에 대한 의중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2월 초순 귀국하는 대로 결판이 날것 같다.
그러나 김회장은 만기이익에 집착해 최고경영진을 자주 바꾸면 장기적인 전략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와 중공업의 성적이 좋지 않다.

<럭키>
3년 에 최고경영진에 대한 인사이동을 단행한 후 그 동안 다독거리는 일에 치중해왔으나 창업주인 구인회씨의 3째 동생이며 구자경 현 회장의 삼촌인 구태회씨가 다시 등장함으로써 큰 폭의 인사이동이 예상된다.
창업공신인데다 금성사 부사장을 끝으로 정계(국회부의장)로 진출했던 구태회씨는 기획통으로 손꼽힌다.
구씨는 작년 말부터 최고협의기구인 운영위원회에 참석함으로써 운영위 멤버는 7인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구씨는 주력기업을 맡지 않고 그룹고문이나 상담역을 택할 것으로 보이지만 직책에 상관없이 경영전반에 대해 폭넓은 활동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신·전선·전기 등의 실적이 좋고 금성사·카본·국제증권 등이 80년에 비해 크게 성장했으나 럭키와 반도상사는 평년작, 계전과 반도체가 불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력기업은 큰 변동이 없지만, 카본(이재연) 계전(윤욱현) 희성산업(이헌상) 등 일부회사는 사장급을 포함한 인사이동이 있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밖의 그룹들>
투병생활로 한동안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던 김한수 회장이 다시 일선에 복귀한 한일합섬그룹과 최근 경영난을 겪고있는 효성그룹의 인사는 태풍의 눈.
지난해 7월 김종희씨의 작고에 따라 장남 김승연씨가 회장직을 맡은 한국화학그룹도 강풍이 예상된다.
동아건설그룹은 최원석 회장의 동생 원영씨가 종합상사에, 안철환 건설부사장을 대한통운사장으로 전보하는 등 인사를 일단 마무리지은 것으로 보이며, 한양주택그룹도 올 들어 모기어의 상호를 주식회사 한양으로 고치면서 분야별 책임경영체제를 굳혔다.
한편 롯데그룹은 올해 초 장성원 롯데쇼핑 대표이사 부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시킨 바 있는데 보강인사에 그치리라는 전망이다. <박병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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