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疾·病·疫<질·병·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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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호 27면

잊을 만하면 나타나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게 전염병이다. 이번에는 아프리카발(發) 에볼라가 세계인을 긴장시키고 있다. 병은 중국 고대에서도 인간을 괴롭히는 요소였고, 한자에 그대로 나타난다.

‘병(病)’자는 ‘疒(녁)’과 ‘丙(병)’이 합쳐진 글자다. 갑골문에서 ‘疒’자는 아픈 사람이 젓가락에 의지해 앉아 있는 모습이다. 병에 걸린 노파가 힘겹게 뭔가 먹으려는 형상이다. 그러기에 ‘疒’자가 들어간 단어는 질병과 관계있다. ‘통증(痛症)’이 그러하고 피곤하다는 뜻의 ‘피(疲)’도 마찬가지다. 잘 낫지 않는 질병은 ‘痼(고)’, 몸에 찬바람이 들어 생긴 병은 ‘풍(瘋)’이다. 가장 무서운 병인 ‘암(癌)’에도 여지없이 ‘疒’자가 들어갔다.

‘질병(疾病)’은 지금 한 단어로 쓰이지만, 원래는 각기 다른 대상을 지칭한다. ‘疾(질)’은 골절 등 외부의 충격으로 인한 병을 뜻하고, ‘病(병)’은 폐병과 같이 신체 내부에서 발생한 병을 일컫는다. ‘疫(역)’은 돌림병이다. 홍역(紅疫)·구제역(口蹄疫)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인들은 ‘에볼라(ebola)’를 ‘埃博拉(아이보라)疫’이라고 표현한다. 그 역시 전염병이기 때문이다.

국가도 자정능력을 잃으면 병들고, 사회도 건전하지 못하면 병이 생긴다. 나라를 병들게 하고 국민을 재앙으로 몰아간다는 뜻의 ‘병국앙민(病國殃民)’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화국병민(禍國病民·국가를 망치고 국민을 병들게 한다)’도 같은 말이다. 개인이나 사회 모두 ‘병이 깊어 치유할 수 없는 상태’를 뜻하는 ‘병입고황(病入膏肓)’은 피해야 한다. 춘추전국시대 법가(法家)를 완성한 한비자(韓非子)는 『한비자』 고분(孤憤)편에서 “죽은 사람과 같은 병을 가진 자는 살아남기 힘들고(與死人同病者, 不可生也), 망한 국가와 같은 형국의 나라는 존재할 수 없다(與亡國同事者, 不可存也)”고 했다. 병들지 않으려면 건강해야 하듯, 국가도 망하지 않으려면 힘을 길러야 한다는 뜻이다.

에볼라 기세가 무섭다. 정부가 역병(疫病) 발생 지역에 보건팀을 파견하는 등 국제 방역(防疫)전선에 동참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환자들의 쾌유(快癒)를 바랄 뿐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장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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