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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비틀스와 싸이, 불황이 키운 월드스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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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미국 CBS 스튜디오에서 노래하는 비틀스. 1960년대 비틀스는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였다. 영국 수상은 “비틀스가 하나 더 있다면, 만성적인 국제 수지 적자를 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포토]

팝, 경제를 노래하다
임진모 지음
아트북스, 232쪽
1만5000원

1997년 IMF 관리체제의 한국사회는 살벌했다. 직장인들은 언제 잘릴지 몰라 불안에 떨었고,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좌절했다. 분노가 폭발한 곳은 다름 아닌 노래방이었다. “닥쳐! 닥쳐! 닥치고 내 말 들어. 우리는 달려야 해. 바보 놈이 될 순 없어. 말 달리자!” 펑크 밴드 ‘크라잉 넛’의 ‘말 달리자’는 90년대 후반 젊은이들의 해방구였다. 과격한 어조와 부숴대는 듯한 굉음의 사운드는 암울한 현실을 잊는 마약이었다.

 불황이 펑크를 호출한 것처럼 음악은 우리의 살림살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음악의 역할이 시대를 위무하는 것이기에 히트곡을 보면 당대의 경제 현실을 읽어낼 수 있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씨가 이 책을 통해 분석을 시도한 것이 바로 음악과 경제의 연결고리다. 크라잉넛처럼 일부 국내 사례가 있으나 중심은 팝과 세계 경제다. 대공황에서 세계 금융위기까지 당대의 히트곡을 통해 굵직한 경제 사건을 꼼꼼히 짚었다.

 우선 흥미로운 명제로 시작해 보자. 저자는 ‘용돈이 엘비스 프레슬리를 만들었고, 가난이 비틀스를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50년대 후반, 대공황이 휩쓸고 지나간 미국 경제는 때아닌 호황을 맞았다. 주머니 사정이 좋아진 부모는 자식에게 용돈을 주기 시작했고 이들은 문화 소비에 열을 올렸다. 로큰롤 스타, 엘비스 프레슬리는 10대의 용돈을 먹고 쑥쑥 성장했다. TV의 보급도 엉덩이를 흔들며 춤 추는 엘비스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반면 같은 시대 영국 경제는 침체기였다. 리버풀 노동계급의 후손이었던 비틀스 멤버들은 명성과 돈을 원했다. 63년에 발표한 ‘(내가 원하는 것은)돈’이란 곡엔 가난을 탈출하려는 욕망이 담겨있다. 64년 미국에 진출한 비틀스는 결국 엄청난 성공을 거뒀고, 자국에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였다. 각기 다른 경제 현실이 전설의 가수를 만들어낸 셈이다.

 저자는 불황 속에서 꽃 핀 노래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신자유주의가 태동하고 빈부의 격차가 커지면서 음악은 물질 만능주의를 꼬집는 저항의 목소리가 됐다. 마돈나는 ‘물질적인 여자’(1984)로 배금주의를 풍자했고, 같은 해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미국에서 태어나’란 노래로 가난의 늪에 빠진 ‘블루 칼라’를 대변했다. 게토의 흑인들은 빈곤과 범죄에 노출된 삭막한 현실을 랩으로 토해냈다. 저자는 “불황에 대박 인기곡이 터진다”고 말한다. 비근한 예가 한국을 넘어 전세계인이 열광한 싸이의 ‘강남 스타일’(2012)이다. 금융위기 이후 경제적 빈곤과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 사람들은 경쾌한 노래로 순간이나마 현실을 잊고자 했다.

 엘비스 프레슬리부터 싸이까지 저자와 함께 시대를 움직인 노래를 살펴보고 나면 복잡하게 보였던 세계 경제사의 그림이 그려지는 느낌을 받는다. 음악 자체를 다룬 책은 아니지만, 역설적으로 시대와 함께 빛을 발휘하는 음악의 힘도 실감하게 된다. 언제 어디서나 인류의 좋은 친구였던 음악, 그 위로의 초능력은 어떤 장르도 대체할 수 없을 것 같다.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S BOX] 대공황 탈출한 미국, 엘비스 러브송에 푹 빠져

‘저기요, 제가 그대의 사랑스런 테디 베어가 될게요/내 목에 줄을 달고서/아무데나 끌고 다니세요.’

 엘비스 프레슬리의 ‘그대의 테디베어가 될게요’(1957). 대공황을 탈출한 미국의 음반제작자들이 10대를 겨냥해 만든 로큰롤 음악.

 ‘조그만 고향의 혼잡 속에 있던 내게/그들은 총 한자루를 쥐어주곤/나를 낯선 이국땅으로 보냈어/가서 황인종을 죽이라고’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미국에서 태어나’(1984). 미국의 젊은이들은 국가를 믿고 베트남전에 참전했으나 돌아온 건 실업자 신세였다.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이 담긴 곡이다.

 ‘우상화된 것을 전복하라/다수의 힘을 모아/통제권을 가진 자들을 몰락시키는 거야’

 그린데이의 ‘네 적을 알라’(2009). 이라크 전쟁 이후 국제 유가는 치솟았고, 금융위기가 오면서 침체의 늪에 빠진다. 젊은이들의 분노는 급진적인 가사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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