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빚어 놓은 걸작 산호섬 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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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산호장」(산호장)이란 이름의 출판사가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시인 장만영씨가 1950년대에 하던 출판사인데 김광균의『와사등』이 거기서 나온 걸로 기억된다. 아무튼「산호장」이란 이름은 그때나 지금이나 몹시 아름다운 이름으로 내 머리 속에 꽂혀있다. 시인이 아니면 가질 수 없는 출판사 이름이지만 나는 정작 산호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면서 그 이름에 끌리고 있는 터였다. 그런데 이름만 아름답다고 느껴왔다. 산호의 실체를 눈이 부시도록 볼 수 있는 기회가 내게 돌아온 것이다. 작년 10월10일, 작가해외연수란 명목으로 나들이를 하게된 우리 일행이 8명(김요섭·권일송·김주연·조태일·김주영· 백시종·이태동·이근배)은 방콕을 출발, 3시간 거리의 파타야 해변에 도착했다. 파타야는 영화『007』 과『에마뉘엘 부인』으로 이름이 나있었지만 바닷물이 맑거나 경치가 뛰어난 곳은 아니었다. 술을 맨 패러슈트가 오르고 스쿠터(바다의 오토바이)가 곡예를 하듯 해안을 누비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1백명을 태워도 되는 배를 전세 내어 산호섬으로 떠났다.
산호섬으로 가는 1시간 남짓, 계속해서 스쿠터가 쫓아오고 권총놀이와 패러슈트를 타는 모습들이 보였다. 바다전체가 하나의 놀이터였다.
섬에 다다르기 전에 나는 나름대로의 상상을 해보았다. 섬의 모양이 산호처럼 생긴 것일까, 아니면 정말 산호가 덩어리져서 하나의 섬을 이룬 것일까. 그러나 섬에 가까워지면서 나는 산호섬에 대한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나라의 서해안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작고 초라한 섬이 시각에 들어올 뿐이었다. 저 섬의 어디에 산호가 있는가? 그런 의문은 곧 풀리게되었다.
우리는 유람선에서 내려 긴 나무 보트에 옮겨 탔고 보트의 밑바닥은 투명하게 유리로 깔려있었다. 보트는 산호섬 가까운 해안을 휘젓기 시작했다. 배의 투명한 밑바닥은 바닷 속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바다 밑은 온통 산호 밭이었다.
산호는 이름보다는 훨씬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때였다.
바다 밑에 깔린 산호의 모양은 천태만상이었다.
어렴풋이 산호란 저런 것이거니 하고 보아온 지금까지의 산호에 대한 인식도 곤두박질이었다.
아무리 신의 창조물이기로 서니 수심 몇m의 바다에 눈꽃인 듯 구름인 듯 기기묘묘한 형상들을 빚어놓은 것은 무엇인가? 바다가 아름답다, 신비하다고 하지만 산호섬의 바다 밑을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바다의 신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산호 밭의 눈부신 투시를 끝내고 점심을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스쿠터를 타기로 결정했다. 스쿠터는 타는 모습만 봐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바다를 펄펄 나는 1인용 고속오토바이인데 그곳에 오는 관광객들을 위해 10대 소년들이 핸들을 잡고 바다 위를 질주하는 것이었다. 스쿠터는 바다의 한가운데를 가르고 나갔다. 그리고 한 마리의 고기가 뛰어오르듯 바다 위를 날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까지 그런 드릴을 맛본 일이 없다.
작은 쇳덩어리가 내는 속도는 너무 난폭했고 유난히 몸매가 작은 태국소년의 두 팔은 난폭한 쇳덩어리를 가누기에는 가늘어 보였다.
거기에 내 몸을 맡기고 높고 푸른 격랑을 마음껏 휘젓고 있었다.
나는 산호섬을 뒤로하고 나오면서 지구는 생각했던 것보다 매우 넓고 지구 위에는 저마다 각기 다른 자연의 신비를 지니고 있음을 새삼 느꼈다.
방콕시내를 흐르는 배남강의 그 혼탁한 물과 수상시장의 불결하던 인상들은 산호섬에 가서 모두 씻은 셈이다. 방콕을 떠나서 쿠웨이트를 거쳐 그리스 아크로폴리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을 돌아봤지만 사람의 손으로 빚어진 것과 신의 손으로 만든 것과의 대비를 산호섬으로부터 볼 수 있었던 것이 하나의 수확이었다.
그리고 시인이 가졌던 출판사의 이름「산호장」이 다시 누군가에 의해 세워지고,『와사등』같은 시집을 내는 그런 서정적 세월이 온다면, 나도 언젠가는 그 아름다운 이름의 출판사에서 한 권의 시집을 내고 다시 가 볼 기회가 주어질 것 같지 않은 태국 남쪽 한 바다 밑을 더욱 오래 기억하게 될 수 있으리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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