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3)-화맥인맥 제76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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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김흥수의 『나부 군상』
1회 국전 때 나는 심사위원으로 한 노인이 해금(해금)을 켜고 있고, 다른 한 노인은 해금소리를 듣고 있는『회고』란 작품을 냈다.
이당(김은호)선생도 할머니 앞에서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를 그린『초보』를 출품했다.
청전(이상범)은『효천보희』란 작품을 내놓았다. 하지만 추천작가로 지명 받은 의재(허백연) 심향(박승무) 탄월(김경원)은 작품을 내지 않았다.
서양화 부에서도 선전추천작가라고 따돌림을 받던 심형구씨는『화실』을, 김인승씨는 『조모상』을 그려냈다.
김흥수씨는『악』과『나부 군상』을 출품해서『악』은 특선,『나부 군상』은 입선의 영광을 차지했다. 그런데 이『나부 군상』이 국전주무관청인 문교부에 의해 철거명령을 당했다.
한사람의 나체도 아닌 여러 사람의 나체를 그렸다는 이유로 전시금지를 당한 것이다.
그때 신문들은『도덕이냐, 예술이냐』는 제목을 붙여 이 문제를 크게 다루었다. 당시 문교부장관이던 안호상씨는『예술작품이라고 해서 사회의 규범을 넘어서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나부 군상』의 작가인 김흥수씨는『한 여성의 나체를 여러 각도로 그려서 조화 있게 늘어놓은 것일 뿐 당국의 걱정처럼 여러 사람을 동시에 그린 게 아니다』고 해명했다.
1회 국전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은 산정(서세옥)의『꽃장수』는 미술학부 교실에서 그린 것이다.
산정은 지게꾼과 여인을 한 화면에 넣고 지게 위에 무더기로 있는 꽃을 그렸다.
1회 때 국전심사는 춘곡(고희동)이 주도했다. 춘곡은 국전 전체 심사위원장일 뿐 아니라 동양화 분과위원장까지 겸했었다. 그는 동·서양화를 두루 잘 아는 분이어서 무불통제였다. 하지만 딱히 누구를 보아줄 사람도 없어서 어려운 일에 부닥치면 최연소자인 나를 불러서 의견을 묻곤 했다.
그때 동양화부 심사장 분위기는 춘곡과 심산(노수현)은 의견이 잘 맞고, 춘곡과 소정은 매사가 대립이었다. 묵로는 비교적 중립을 지켰기 때문에 의견대립이 생기면 불치하문을 생각했던지 나에게 동조를 구해서 풀어나갔다.
1회 국전이 열리고 있을 때 근원 (김용전)은 신문에 평을 썼다. 동양화만 다루었는데 근원의 평을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고희동씨의「비행기 상에서 본 알래스카」는 씨의 종래의 수묵담채 산수와는 달리 호분을 섞어가며 수채양식으로 그린 조감도인데 노경에 새로운 시도이기는 하나 신기한 일면이 보이는 동시에 앞으로 어떠한 계획을 하고 있는지 이 일점만으로는 씨의 의도하는 바를 알기 어렵다.
신기한 취재에 배렴씨의「서운」이 있으나 운용의 연구과정이 부족하여 부당한 모험을 한 듯한 인상을 준다.
노수현씨의 산수는 창윤한 먹색과 밝은 공간의 처리가 좋고 씨의 독특한 화폭의 넓은 점이 누구도 따르지 못할 실력을 보였으나 항상 씨에게서 위험을 느끼는 점은 너무 기상천외한 별천지를 그리려는데 씨의 장점을 발견하려다가 도리어 단점같이 보이는 수가 많은 것이다.
소품에서 항상 소박한 산수를 보여주던 변관식씨의 이번 작품은 근래에 보기 드문 실수이며, 김은호씨의「초보」도 별 진전이 보이지 않고, 이상범씨의 새벽녁을 그린「효천보희」도 백면이 여구하여 그저 무난하다.
오래간 만에 보는 최우석씨의 선현들을 취재한 병풍은 역시 달필정도에 그치고 만 듯하며, 이용우씨의「충혼」은 완전히 실패작이다.
장우성씨의「괴고」는 이번 전시회의 큰 수확이었다. 씨의 동양화적 교양과 일본화에서 배운 사실의 정신이 합쳐져 우리가 늘 꿈꾸고 있는 조선화의 길을 가장 정당하게 개척하였다. 씨는 종래의 일본화적 인상을 주기 쉬운 호분의 남용도 없고 일본화선조의 무기력하고 억양을 잃은 그러한 선조도 없고 의문의 처치, 체구의 운염, 결구의 허실, 부채의 담아, 그리고 낙점운획이 모두 그 자리를 얻었다.
장씨의 화풍은 벌써 그 훈도를 받고있는 서세옥(특선)·박노수 외 몇몇 신진 등에게도 영향을 던지고 있거니와 앞으로 우리 나라 모필화는 반드시 이러한 길로 걸어가게 될 것이요, 이러한 길이야말로 고루한 냄새도 없어지고 일본색도 축출하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신진특선에 서세옥씨의「꽃장수」는 인물의 배치는 실패요, 달리아 꽃의 표현은 좋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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