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부씨의 시『시에 대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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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 달의 시중에는 이성부씨의『시에 대하여』(이성부 시집『전야』중)·김종해씨의『항해일지④』(현대문학)·김광규씨의『잊혀진 친구들』(문학사상)등이 평론가들에 의해 주목받았다.
이성부씨의『시에 대하여』는 시가 시의 전통적인 효용인 아름다움 즉 진실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시인이 철저히 절망하고 그 절망 속에서 오히려 시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시에 대한 詩人의 절망은 언어가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는데서 찾아진다.
「이미 약속을 저버리기로 한 언어/이미 저를 시궁창 쓰레기통 속에 처박아 둔지 오래인 언어/이미 저를 몸째로 팔아버린 언어」라는 표현은 언어 자체가 이미 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구성원에 의해 믿음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속에서 언어를 주물러 시를 쓰는 시인은 어떤 존재인가.
이씨는 자신이 진실한말을 찾아낼 능력이 있는가 라는 의문과 함께 이 사회·이 문명이 진실을 받아들일 능력이 있는 가라는 양면에서 모두 절망하고있다.
이씨는 이렇게 노래하면서 그러나『철저한 절망만이 절망을 극복한다』는 믿음을 가지고있다.
김종해씨의『항해일지④』는 도시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이 시속에「상어」는 도시문명의 병적 증후와 함께 비리·허무의 상징이다. 도시인의 허망한 실존과 위기의식은「날마다 을지로나 청계천을 노 저어 가지만」「아침마다 도장을 눌러대지만」등의 표현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김씨는 이 허망·위기의식의 상징인「상어」에 대해「날마다 작살의 날을 시퍼렇게 갈고 또 갈았지만/나는 작살을 쓰지 못했다」라고 말하면서 비판의식과 함께 소시민적인 무력감도 보여주고 있다. 현대인의 삶을 평이한 비유로 처리했다.
김광규씨의『잊혀진 친구들』은 사업에 망한 사람, 가난한 번역가, 포장마차로 실패한 사람. 이발소 하다가 망하고, 택시 몰다 망하고…등등의 사람들에 대해「손끝에 피 한 방울만 나도 파상풍균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좀더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윤리를 담고 있다. 김씨는 하나의 집단은 항상 이성적이기만 한데 때로는 감정을 가지고 세상을 느껴보고 그에 대응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은가를 말해본다.

<도움말 주신 분="김치수·조남현·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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