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트 최후의 회고록<1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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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나는 해결방도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이는 어떠한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더라도 냉정을 잃어 화를 내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고 있다. 더구나 나는 문제해결을 위해 한가지 방안만을 찾으려 하지 않고 차선의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고있다.
만약 첫번 해결방안이 실패한다면 두번째 방안을 쓰고 그래도 안 되면 세번째 방안을 활용하는 식으로 차선책을 동원한다.
나는 아주 풀기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는 순수하고 솔직한 의사가 대단히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당면한 가장 어렵고 복잡한 문제, 아랍-이스라엘 분쟁문제의 해결방도를 내가 검토하기 시작했을 때 떠오른 생각이 바로 이 체험적 교훈이었다.
아랍-이스라엘 분쟁에 관한 포괄적인 해결방안이 아직 마련되지 않고 있지만 우리는 공정하고도 포괄적인 해결방안을 찾는데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레바논도 의제채택>
분쟁해결의 시작은 쉽지 않았다-. 77년 2월 「지미·카터」미 대통령이 취임 1개월 뒤에 나의 방미를 초청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는 풀려나가기 시작했다.<별항참조>
「카터」대통령과 나와의 워싱턴 회담의 주요 안건은 바로 아랍-이스라엘 분쟁 문제였다.
워싱턴 회담의 의제는 3개 조항이었다.
첫째, 67년 제3차 중동전에서 이스라엘이 점령한 아랍영토 처리 문제.<별항참조>
둘째, 아랍제국과 이스라엘간의 관계개선 문제.
세째, 팔레스타인 문제.
우리 아랍측은 이 문제를 다른 모든 문제의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레바논 사태를 네번째 조항으로 의제에 추가했다. 당시 레바논에는 내전이 터져 그 양상이 퍽 복잡했다.
「카터」대통령과 나의 회담에서 67년 전쟁이후의 아랍점령지 처리문제에는 별 이견이 없었으나, 아랍과 이스라엘간의 관계개선 문제에서는 생각이 달랐다. 나는 「카터」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측이 아랍영토를 계속 점령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들과 관계정상화를 하라고 말씀하실 수 있읍니까. 이스라엘은 아랍영토 점령을 정당화하기 위해 점령지로부터의 철수협정 체결 이전에 아랍측과의 관계정상화를 바라고 있읍니다. 이스라엘은 타국의 영토를 점령하기 위한 구실로 이스라엘의 안보를 내세운 바가 있읍니다. 그러나 10전쟁(주·이집트측이 승리한 73년 10월의 제4차 중동전)은 이스라엘의 안보논리가 거짓말임을 밝혀 주었읍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측은 점령지로부터 철수하는데 동의하기 전에 아랍측과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새로운 요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카터」대통령에게 이렇게도 말했다.
『우리가 점령 종식에 동의하고 아랍영토로부터 이스라엘측의 완전 철수 일정이 마련되기 전에 이스라엘측이 우리에게 관계정상화를 요구하는 것을 수락할 수 없읍니다. 이스라엘이 아랍영토를 계속 점령하고 있는 한 정상화 문제를 거론한다는 것은 어떠한 아랍지도자들도 받아들일 수 없읍니다.』
「카터」대통령과 나는 이 문제를 장시간 토론했다. 「카터」대통령은 그의 견해를 나에게 확신시킬 수 없었다. 그러나 나의 방미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다. 「카터」대통령과 나는 문제해결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아랍, 이스라엘 분쟁해결을 위해 공동노력을 아끼지 말자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미대통령으론 처음>
나는 「카터」대통령에게 한 말을 지금도 기억한다. 『우리는 결코 희망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당면한 문제 하나 하나에 대한 해결방안을 끝내 찾아내고 말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두 사람이 직접 접촉을 유지하여 우리가 취하는 각 단계의 조치에 대해 상호 견해를 교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카터」대통령은 진지하게 약속을 했다. 그는 모든 관계 당사국이 수락할 수 있는 공정하고도 포괄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기를 원했다.
「카터」는 미국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국토에 대한 팔레스타인인의 권리를 부단하게 주장했다. 「카터」이전의 어떤 미국대통령도 감히 팔레스타인인의 실지회복권을 언급한 사람은 없었다. 「카터」대통령만이 이 문제에 대한 그의 견해를 밝혔던 것이다.
「카터」대통령은 즉각 전 세계 시오니즘의 증오와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그들은 그 막강한 세력으로 「카터」대통령을 파멸시키려고 온갖 것을 자행했다.<별항참조>
「카터」대통령이 시온주의자들과 이스라엘측의 증오에 직면한 것은 납득이 갈만하다. 그러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팔레스타인인의 실지회복권을 주장한 미국대통령에게 보인 아랍측의 반대다. 이스라엘이란 국가가 창설된 「해리·트루먼」대통령 시절이후 「카터」가 집권할 때까지 그런 견해를 밝힌 미국대통령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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