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4. 땡볕 <17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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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탬키는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던 미군 기지촌이었다. 길 양쪽으로 기지에서 흘러나온 시멘트 블록이나 판자로 지은 바라크들이 줄지어 있었고 식당이며, 음료수집, 기념품 가게, 바, 사창가들이 있었다. 그것은 일킬로도 못 되는 짧은 다운타운에 불과했지만 집집마다 암거래로 흘러나온 담배며 레이션 캔맥주 콜라 등이 흔천이었다. 탬키는 기지 서쪽가녘에 붙어 있었고 길 건너편에는 대대 방어 지역이 있어서 침투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었다. 다만 탬키가 점령되면 비행장이 로켓포의 사정거리에 들어가기 때문에 어두워지면 읍내의 남북 양쪽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쳐서 마을을 봉쇄했다. 우리는 천천히 읍내 앞 한길을 왕래하며 동정을 살피고 적당한 곳에 정차해 두고는 다시 마을의 곳곳을 둘러보는 것이 일상적인 순찰이었다. 베트남 하사관 뉘엔과 미군 두 사람, 그리고 한국군인 나와 미군 두 사람이었으니 2개 순찰조가 촌락 순찰에 동원된 셈이었다.

뉘엔이 앞장서서 어느 바에 들어갔는데 실내는 한산했다. 근무 중이라 그냥 소다수만 한 캔씩 마셨는데 뉘엔이 안에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인 아줌마에게 뭐라고 물었다. 그들이 얘기를 나누고 나서 뉘엔은 우리에게도 말해 주었다. 여자 애들이 보이지 않아서 주인에게 물었더니 모두들 이웃 읍내로 출장을 나갔다고 했다. 거기서 아마도 큰 파티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우리가 슬슬 한길 쪽으로 나오니 뉘엔은 길을 건너 맞은편 집에도 들어가 보고는 어쩐지 이상하다고 온 동네가 한산하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웬 다른 집 아줌마가 웃으면서 그에게 손짓을 했다. 우리가 차에 올라타서 한참이나 기다릴 때까지 소식이 없어서 그와 동행이었던 미군 조원이 그 가게로 들어갔다가 혼자 나왔다. 그가 웃으면서 쌍소리를 섞어 가면서 말해 주었다. 뉘엔이 예전 파트너를 만나 탬키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는 거였다. 우리는 그냥 건성으로 웃으면서 탬키를 떠났다.

그날 저녁에 탬키 주변에서 밤새껏 전투가 벌어졌다. 아침에 연락이 와서 순찰조는 네 팀이나 완전무장을 하고 탬키로 나갔다. 이미 마을은 미군 보병들에 의해서 장악되어 있었다. 읍내의 곳곳이 박격포의 포격을 맞아 부서지고 우계의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는데도 연기를 올리며 불타는 중이었다. 거리 곳곳에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대대 방어지역으로 침투하려던 게릴라들의 시체 삼십여구를 마을 어구에 모아놓고 전시하던 중이었다. 나는 나중에 작전에 나가 브레이킹 소대원으로 시체 처리반에서 일하게 되는데 그때에 더욱 참혹한 주검의 잔해들과 만나게 된다. 탬키 마을에 침투했던 게릴라들은 모두 농민들처럼 검은 파자마에 타이어 고무로 만든 호치민 샌들을 신고 있었다. 무기와 탄띠들은 보병들이 모두 회수해 가서 맨손인 시체들은 갖가지 모양으로 죽어 있었다. 두 다리가 없어져 버린 것들, 팔과 머리가 날아간 것들, 그냥 총탄만 맞은 비교적 깨끗한 시신들,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으깨진 고깃덩이뿐인 잔해들, 상반신이 검게 불타버린 것들, 밤새도록 내린 몬순에 벌써 검푸르게 부패가 시작되어 팅팅 불어 터질 듯한 배와 다리들. 이것은 나중에 민간인이 되었을 때 내 악몽의 단골 소재들이 되었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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