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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스카우트 경쟁의 만화경(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대학스포츠는 한나라의 스포츠를 유지 발전시키는 동맥의 역할을 한다. 이 점은 자유서방국가이거나 공산국가나 거의 다를 바 없다. 또 아마추어 스포츠영역만이 아니고 프로스포츠도 대학스포츠의 반석 위에서 꽃을 피우는 게 일반적이다. 프로야구가 태동하고 더구나 88년 올림픽과 86년 아시안게임의 서울개최를 계기로 각종 스포츠의 일대 진흥을 꾀해야하는 시점에서「추잡한 스카우트경쟁」이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고있는 국내대학스포츠를 혁신해야한다는 소리가 높다. 한국대학스포츠를 벗겨보고 나아갈 정도를 생각해 본다.
『아무리 몸을 웅크려도 사람들 눈에 띄게 마련일 2m2cm거인이 용케도 20여일 동안이나 잘도 숨어 있었다』-. 관계자들이 어이없어 웃으며하는 말이다.
82년 벽두에 대학스포츠의 스카우트과열 상이 빚은 코미디 같은 해프닝의 주인공 남상만(경복고·농구)은 결국 당초의 진로대로 고려대에 복귀, 한때의 납치 설과 경찰의 소재수사 등 한바탕 소란을 무사히(?)가라앉혔다.
남은 함구로 일관, 소동의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대학스포츠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이미「직감」으로 스카우트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잠적이라고 확신했다. 남을 유인했다는 혐의를 받은 모 대학의 감독은 문제가 커지자『남이 여자친구와 숨어서 즐기고 있다더라』고 단수 높은 안개 피우기 작전을 펴 실소를 자아냈다.
이 점은 하나의 조그마한 실례다. 대학 팀의 관계자들은- 물론 일부 주요구기종목의 경우-제갈 공명을 뺨치는 술수(술수)와 책략, 그리고 철판을 깐 뱃심 등 몇 가지 비범한 재주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다만 탐색시기엔 은밀한 작전을 펴다가 결정적 시기가 되면 납치라는 원시적 실력행사에 호소하는 것이 습관화, 체육인들 특질과 지능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경찰이 개입하는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 일쑤인 이 납치라는 비행(비행)이 묘하게도 목적달성에 매우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남상만 잠적에 이어 전윤호(경북 체고·배구)가 경부선 야간열차 속에서 성균관대 측에 이끌려 사라졌다. 전은 서강대·성균관대 두 군데 대학을 저울질하고 있었고 성균관대가 최후의 결정타를 때린 셈이다. 그래서 성균관대는 지금까지 전을 극비의 은신처에 신변을 확보, 쾌재를 부르고있다.
건강한 운동선수가 자기의사에 반해 쉽게 납치·유괴될 리는 없다. 그러나 감언이나 협박. 혹은 거짓 꾐으로 사실상 납치되고 감금되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까지 명문대를 다닌 각 종목 1급 선수들은 대부분 대학입시를 2∼3개월 앞두고 미리 특정대학의 합숙소 생활을 감수해야했다. 명목상으로는 훈련이지만 주된 이유는 다른 학교에 뺏기지 않기 위한 대학 측의 보안조치다.
납치 극의 하이라이트는78년 초 당시 서울체고 졸업반이던 박종천(농구·헌대)이다. 윤득영과 함께 그해 고교농구 랭킹1위롤 다투던 박은 일찍 손을 쓴 고려대의 숙적 연세대는 좌시만 하고있지 않았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중 마침내 심야의 납치작전을 결행했다.
특공대로 선발된 연세대농구의 맹장 신선우(당시 졸업반)가 새 후배를 데리러, 아니 훔치기 위해 서울 체육고 기숙사를 한밤중 습격했다. 신은 담장을 넘어 들어가 잠든 숙소로 잠입했고 비몽사몽(비몽사몽)간에 어리둥절해하는 박을 낚아채듯 끌어낸 후 역시 담장을 넘어 탈출했다. 기막힌 드릴만점의 전격작전 이었고 깨끗하게 성공했다. 박은 연세대학생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고려대는 억울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75년 초 고려대는 명지고를 졸업하는 유망포워드 진효준을 납치한 전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진은 오래 전부터 한양대로부터 부친의 치료비등 상당한 후원을 받으며 진학을 약속한 터였다. 진은 처음엔 신의를 지켜 고려대로부터 두 번이나 도망했으나 다시 끌려갔고 결국은 고려대의 끈기와 위력에 굴복했다.
납치가 성공은 했으나 결코 후환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박종천은 스카우트 파문의 문책을 받아 서울체고로부터 제적처분을 받았고 (후에 문교부지시로 졸업은 했음) 진효준은 자신의 스캔들로 인해 모교 명지고가 농구부를 해산, 회초리보다 더 아픈 정신적 고통을 겪어야했다.

<박군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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