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2)「그리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아테네의 7월은 한증막과 같았다. 여름에는 비 한방을 내리지 않고 겨울에만 오는「동우형」기후의 특성 때문인지 푹푹 쪘다.
아테네 시는 건조한 기후를 대변이라도 하는 듯 산에 나무가 없다. 빨간 알몸을 드러낸 돌산이 을씨년스럽게 누워있다.
시가를 돌면서 놀란 것은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도 까만 옷으로 정장, 불볕 속을 걸어다니는 머리를 깍지 앓은「쪽진 머리」신부였다.
이 나라에선 국민들의 나고 폭음은 물론, 결혼까지 그리스정교가 맡아서 하기 때문인지 신부의 발걸음은 바쁘기만 하다.
세례를 받아야 비로소 호적에 오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부父의 권위를 알 수 있다. 사람이 죽어도 신부를 통해야 묘지를 얻을 수 있다. 그리스에는 화장이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관 뚜껑도 덮지 않는다.

<묘지도 신부 통해>
산 사람을 대하듯 그 위에 키스, 사자와 대화를 나눈다.
땅에 묻힌 시신은 3년 후에 다시 파내어 교회지하실에 안치한다. 3년 더 땅에 묻혀 있으려면 교회에 헌금하고 연장을 받아야 된다. 이 만큼 교회의 권한은 절대적이다.
이래서 그리스를「종교 공화국」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그리스는 또한 학생천국이다. 애를3명 이상 낳아야 세금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국민학교서 대학까지 무상교육이다. 물론 책도 무료로 배부한다. 학생이 살인을 했다해도 학교는 처벌하지 못한다. 학생은 버스·기차·비행기도 모두 반값이고 극장도 반액으로 우대한다. 뿐만 아니라 빙원은 모두 무료다.
남자는 침대와 신부 드레스만 준비하면 결혼할 수 있지만 여자는 반드시 집 한 채가 있어야한다. 그래서 딸 결혼할 때 주려고 부모들이 집을 두 세 채씩 확보해 둔다.
이 때문에 방2, 거실1개있는 아파트가 3만 달러를 호가한다.
우리는 아테네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지금 대학원에서 고대희랍어를 공부(박사과정)하는 남정자 양의 안내로 시내관광을 마치고「볼리아그메니」로 불리는 꺼진 땅에 갔다.
꺼진 땅에 물이 괴어 천연 풀로 활용하고 있었다. 약수로 소문이 나 노인들이 많이 몰려드는 곳이다. 물결이 세서 사람까지 빨아들인다고 접근하지 말라는 위험표지가 붙어있는데도 그곳을 횡단하는 용감한 할아버지가 있었다.
날이 워낙 더워 우리도 훌훌 벗고 풍덩 물 속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하지만 운보도 기자도, 안내하는 아가씨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남양은 이런 우리의 속셈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여기서 목욕하면 무병 장수한다』며 차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와서 우리들에게도『어서 들어 오라』고 부추겼다.
알고 보니 남양은 79년 그리스시인「엘리티스」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 때 그와 단독회견, 한국신문·잡지에 소개한 지성과 미모를 갖춘 아가씨였다.
여기서 더위를 식히고 1시간 가량 더 달려서 포세이돈 신전에 갔다. 2전5백년 전에 세웠다는 바다의 신전 포세이돈은 대리석기둥만 남아있었다. 접착하지 않고 돌 속에 구멍을 암·수로 파서 맞추었다.
신전 앞 축대에는 슬픈 설화가 서려있다. 아테네는 크레타 섬에 매년 7명의 여인을 바쳐야했다. 무서운 뿔 달린 동물이 조공 받은 여인을 잡아먹었다. 이것이 싫어 아테네 왕자가 이 동물이 사는 동굴에 들어가 괴물을 죽이겠다고 부왕께 하직, 크레타 섬으로 갔다.

<돈준대도 ″천천히〃>
크레타 섬 공주가 아테네 왕자를 사랑해 동굴에 들어갈 때 손에 실을 쥐어주고 실만 따라 나오도록 일렀다.
괴물을 죽이고 개선하는데 성공하면 기를 바꿔 달겠다는 부왕과의 약속을 깜박 잊고 그냥 돌아오자 왕은 아들이 괴물에 잡혀 먹힌 줄 알고 그만 떨어져죽었다. 이 자리가 바로 포세이돈 신전 앞에 있다.
운보는 이런 사연이 서려있는 신전 앞에서 스케치하면서『희랍신화는 어디서 들어도 재미있다』고 했다.
우리는 목도 축일 켬 신전 옆 식당에 들어갔다. 그런데 낼큼 음식을 가져다주질 않았다. 뭐든지 『시가시가』(천천히)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음식값을 주겠다고 해도 받으러오지 않았다. 10여분을 기다려도 감감소식이다. 웨이터에게『차 탈 시간이 바빠 가야겠다』고 돈 받기를 간청했지만『그건 댁의 사정』이라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은행도 상오8시부터 하오1시30분까지만 영업하고, 상점도 l주일에 3번, 그나마 하오5시부터 8시까지만여는 데가 많다는 것이다.
하오2시30분부터 5시30분까지 3시간은 시에스터 (낮잠시간) 여서 피아노도 못 치게 법으로 금하고 있다.
밤에는 술집에 갔다. 가수가 나와서 노래를 했다. 한 손님이 노래하는 가수에게 꽃다발을 선사했다. 이윽고 그 꽃이 관중에게 던져지고「무주키」로 불리는 접시 깨기가 시작된다.
한 2백여 장은 넉넉히 되는 접시를 박살이 나도록 땅에 메쳤다. 사기그릇을 태기 치듯 던져버리니 산산조각이 날수밖에….
관중은 좋아라고 박수를 치고「무주키」하던 사람은 연신 고개를 조아려 답례한다. 이게 그리스의 민속인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놀이라는 것이다.

<접시 깨기는 이채>
이름날 우리는 고대그리스의 유적지를 샅샅이 돌아봤다.
헌법광장 (신다그마광장)·콘콜디아광장·제우스신전·아크로폴리스·파르테논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고적을 답사했다.
디오니소스 극장은 반원형 무대에서 아크로폴리스를 향해 부채모양으로 펼쳐졌는데 관객석은 5천명을 수용할 수 있다. BC6세기 께에 건립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이다.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도 무대에서 35층 꼭대기까지 말소리가 들리도록 자연의 음향효과가 나는 노천극장이다.
나는 안내자의 말이 사실인가 싶어 동전을 꺼내 15층 계단쯤에서 무대로 던져봤다.「찌렁」하고 울리는 소리가 여간 크지 않았다.
일요일에만 선다는 홀레야마키트에 가서는 여러 가지 민속품을 샀다.
2백여 점포가 늘어선 이곳은 토산품·골동품·중고물 등이 즐비했다.
아테네시내를 일망무제로 내려다 볼 수 있는 서울의 남산 같은 리카파토에도 올라갔다.
올리브와 오렌지나무가 길가에 늘어서 있는, 한국의 인천항 같은 툴케리마니(작은 부두)를 돌아서 선박 전사장에도 가봤다.
피레야(툴케리마니의 별칭) 에서는 오나시스부자무덤이 있는 스코르피로스 섬에 가는 배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시간이 없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테네를 떠나면서 우리는「소크라테스」가『악법도 국법이다』며 사약을 받은 토굴감옥에 차를 세우고 스케치북을 펴들었다

<이규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