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이슈] "도우며 사는 재미 예전엔 몰랐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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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벽화봉사단원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길음동 웅지어린이집 벽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벽화봉사단은 매달 1~2회 주말을 이용해 복지관ㆍ노인회관 등을 돌며 벽화를 그려주고 있다. 박종근 기자

"봉사, 그거 정말 재미있습니다. 남을 도와주며 산다는 것만큼 재미있는 게 없어요."

보건복지부 이상용(50) 연금보험국장은 과천 관가에서 '봉사왕'으로 통한다. 이 국장은 2년 전부터 매주 일요일마다 이웃집 고엽제 환자(56)를 방문해 말벗이 돼 주고 차에 태워 야외 나들이를 간다. 그는 2년 전까지 용인의 중증장애인 시설을 찾아 마늘도 까고 기저귀도 갈아 주는 등의 봉사활동을 했다. 그 전에는 정신지체아 2명을 6개월간 집에서 맡아 키우기도 했다. 그의 부인 문정희(47)씨는 남편보다 더 열성적인 자원봉사자다. 그는 1995 ~ 96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지존파를 서대문교도소로 찾아가 선교활동을 했을 정도로 소외된 계층을 찾아 돕는 데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는다. 이 국장 부부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는 시간과 정성을 바쳐 나눔을 실천하는 자원봉사자가 많다.

◆ 다양한 봉사 유형=삼성중공업 직원들로 구성된 '이목봉사단'은 매월 둘째.넷째 토요일 인쇄소를 찾아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도서 인쇄를 돕고 있다. 남서울대 건축학과 사랑의 집짓기 봉사단은 지난달 25일 천안에서 저소득층 집짓기 봉사를 했다.

경남 마산 내서읍에 사는 엄광현(12.삼계초등 6)군은 2003년부터 마산 일대의 사회복지시설을 수시로 찾아 바이올린을 연주하거나 시조를 낭송하고 부채춤을 추는 등 불우이웃을 위로하고 있다.

서울 마포재가노인복지센터 시니어 봉사단의 박경애(70.여)씨는 매달 두 번 노인복지센터 두 곳을 돌며 가요.민요를 불러 주고 가족 없는 노인들의 말벗이 돼 준다. 사진봉사단의 조상우(40) 회장은 저소득층의 결혼 사진이나 노인의 영정 사진을 찍어 주고 있다.

건강하고 가진 사람들만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인천시 남구에 사는 김영환(43).고춘애(45)씨 부부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다. 김씨는 시각장애와 지체장애 2급이며 고씨는 지체장애 2급 장애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은 매주 동네 복지관에서 복지관 매장을 관리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김씨는 "생활은 힘들어도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보람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 소득 증가와 의식 개선이 원동력=한국사회복지협의회 정영철 팀장은 봉사활동 증가 추세와 관련,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 사회에 이제 주변을 둘러볼 경제적 여유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평택대 김범수 교수는 "미국의 경우 전 국민의 절반 정도가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경제적 가치는 전체 예산의 5~7%와 맞먹을 정도"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리의 경우 아직 미국 수준은 아니지만 국가가 담당하지 못하는 취약분야를 자원봉사활동이 상당 부분 메우기 시작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주5일 근무제 도입 이후 여유시간이 많아진 것도 봉사활동 증가의 원동력이 됐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주말에 각종 단체.시설에서 봉사한 사회복지분야 자원봉사자 수(복지부 등록 봉사자 기준)는 전년 대비 53.2% 늘어난 24만 명으로 집계됐다.

중.고교와 대학이 교육 목적에서 학생들의 봉사활동을 의무화한 것도 자원봉사의 저변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성균관대는 재학 중 30시간의 봉사활동을 해야 졸업할 수 있고 단국대.남서울대.동덕여대.인제대 등 16개 대학이 재학 중 봉사활동을 의무화하고 있다.

◆ 확산의 걸림돌=봉사자가 늘고 있지만 전문성을 갖춘 봉사 인력이 적재적소에 제대로 배치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정영철 팀장은 "가령 치매노인 수발 등의 봉사자를 찾을 때 마땅한 사람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사회복지분야 봉사자의 배치.훈련이나 봉사계획을 세워 주는 전담기구를 만들어 교통정리를 해 줘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봉사 중 상해를 입을 경우에 대비한 보험가입 제도도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져 있다. 정부는 올해 6000만원의 예산으로 봉사 횟수가 많은 자원봉사자 4만 명에게만 최고 보상한도 5000만원의 보험을 들어 줬다. 이는 전체 봉사자의 0.4%에 불과한 수준이다. 미국 등 선진국들의 경우 자원봉사자의 상해보험 가입 비율이 50%를 웃돈다.

볼런티어21 이강현 사무총장은 "상해보험 가입 규정 등을 담은 자원봉사활동 관련 법률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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