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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소 경기 않고 매달 3800만원 꿀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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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5일 경북 청도군 화양읍 삼신리 청도 소싸움 경기장이 문이 굳게 잠긴 채 텅 비어 있다. 청도공영사업공사와 한국우사회가 경기장 사용료 문제로 갈등을 빚으면서 올 들어 단 한 번도 소싸움 경기가 열리지 못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올해 소싸움 경기를 열지 못한 경북 청도군이 출자기관인 청도공영사업공사를 통해 싸움 한 번 하지 않은 소들에게 매달 3800만원씩 사료값을 지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싸움소 주인들이 “갬블(도박) 경기가 열리지 않아 먹고 살기 힘들다”며 반발해서다.

 싸움소는 청도 소싸움 경기에 나가면 돈을 번다. 몸무게 801㎏ 이상인 싸움소가 한 차례 경기에 나가면 출전수당 100만원을 받는다. 승리하면 60만원이 더해지고, 2연승을 하면 30만원을 추가로 받는다.

 16일 청도공영사업공사에 따르면 사료값 지원은 지난 6월 시작됐다. 공사는 경기에 매년 참가하는 싸움소 194마리를 추렸고 이때부터 한 마리에 20만원씩 매달 지급하고 있다. 지원 근거는 청도군의 ‘싸움소 기반 유지’ 조례. 소싸움 경기 활성화를 위해 필요하다며 이 조례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조례에는 ‘경기가 열리지 않으면 싸움소에 사료값을 준다’는 내용은 없다. 공사 관계자는 “솔직히 사료값이라도 지원하지 않으면 어떤 싸움소가 청도에 남겠느냐”고 말했다. 결국 경기가 열릴 때까지 반발 없이 청도에 계속 남아달라는 ‘달래기용’으로 세금이 쓰이는 셈이다.

 싸움소 주인들은 사료값은 받고 있지만 여전히 생계가 막막하다고 입을 모은다. 통상 싸움소 한 마리가 경기에 출전해 1년간 버는 돈은 체급별로 1000만~2000만원. 그러나 대회가 없어 월 20만원이 수익의 전부다. 싸움소를 키우는 변승영(63)씨는 “청도 싸움소 20마리 이상이 수익이 없어 다른 지역으로 팔려 나갔다”며 “조만간 싸움소 주인들이 공사를 찾아가 대책 마련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주인들은 경남 진주와 전북 완주, 충북 보은 등지의 소싸움 대회를 찾아다니고 있다. 1등부터 4등까지 상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지역 대표 관광상품인 소싸움 경기가 중단되면서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 지난해 경기장을 찾은 관광객은 100만여 명에 매출은 195억원이었다. 청도역 앞에서 만난 한 식당 주인은 “매출이 20% 정도 줄어든 것 같다. 자영업 쪽은 타격이 크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회 개장은 언제쯤=2011년 이후 매년 2~12월에 열려 온 청도 소싸움 경기는 아직 언제 재개될지조차 알 수 없다. 공사와 한국우사회의 경기장 사용료 갈등이 해결되지 않아서다.

 청도 소싸움 경기장은 2011년 건설비용 432억원 중 국비와 지방비 등 행정기관이 87억원을 부담하고 나머지 345억원은 민간 주주로 구성된 한국우사회가 냈다. 우사회는 그 대가로 31년 9개월 동안 경기장 무상 사용권을 받았다. 그러나 ‘민간업체는 소싸움을 운영하지 못하고 지자체 또는 공기업만 가능하다’는 법(전통 소싸움에 관한 법률)이 생기면서 그동안 공사가 대회를 도맡아 왔다. 지난해까지 양측은 당초 경기장을 개장하면서 “2013년까지 대회가 적자를 기록하면 경기장 사용료를 공사가 우사회에 별도 지급하지 않는다”는 협약을 해 큰 잡음없이 경기를 치렀다. 그러다가 올해 들어 우사회가 “이제 정상적인 사용료를 지급하라”고 했고, 공사는 “원하는 만큼의 사용료를 줄 상황이 아니다”고 반박하면서 경기가 열리지 못하고 있다. 

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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