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절대권력'에 민주화 바람 솔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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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아랍의 왕정국가들에 변화가 일고 있다. 절대왕정국가가 입헌군주제로 변신하고 수십 년 만에 선거가 치러지고 있다. 미국의 '대중동 민주화' 정책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아직 정부가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개혁'이어서 한계가 있지만 중동의 절대권력에도 민주화 바람이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 카타르의 변신=카타르는 197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절대 왕정 체제였다. 그러다 9일 입헌군주국가로 바뀌었다. 헌법은 2003년 4월 국민투표에서 압도적 지지로 통과됐다. 그러나 카타르 정부는 그동안 헌법 발효를 미뤄오다 이날 공포했다. 카타르 법무장관은 "카타르가 민주주의 국가로 향하는 역사적이고 영광스러운 날"이라며 "카타르가 보다 발전된 문명사회로 진입했다"고 발표했다. 헌법으로 많은 것이 바뀐다. 우선 국왕의 절대권력이 행정부.사법부.입법부로 나눠진다. 45명으로 의회가 구성된다. 곧 총선이 실시될 예정이다. 언론 자유도 공식적으로 인정된다. 모든 선거에서 여성의 투표권과 피선거권이 인정된다.

◆ 위로부터의 개혁=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지기는 하지만 아직도 실질적인 권력은 국왕과 왕족이 갖고 있다. 카타르의 경우 대부분 정부 부처의 요직 임명권은 왕족이 독점한다. 의회의 3분의 1(15명)도 국왕이 임명한다. 정당 설립의 자유도 아직 없다. 야권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왕족의 입장이 그대로 반영됐다. 10년 뒤에야 헌법에 정당 설립 허용 여부를 포함할지를 다시 심사할 예정이다. 알자지라 방송은 10일 "외부의 압력에 의한 위로부터의 개혁이 갖는 한계점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 그래도 중동 민주화에 기여=카타르의 변화는 다른 아랍권 왕국에 상당한 압력 효과를 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중동에선 미국의 '대중동 민주화 정책'의 영향으로 조금씩 민주화 물결이 일고 있다. 쿠웨이트는 지난 5월 사상 처음으로 여성에게 참정권을 허용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올해 초 사상 처음으로 지방의회 선거를 실시했다. 이런 가운데 카타르의 변신은 변화의 파고를 한층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동에서 아직 절대왕정을 유지하고 있는 오만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충격을 받았다. 두 나라는 91년 제1차 걸프전쟁 이후 미국의 압력으로 '기본법'을 제정, 시민의 권리와 정부 구조에 관한 규정을 만들었지만 아직 헌법은 없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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