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NOW] "캠퍼스는 주민들의 문화센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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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 지난 1일 서울대 박물관이 개설한 ‘한국 건축의 보편성’수요 교양강좌에서 주민들이 학생들과 함께 강의를 듣고 있다. 수강생 가운데 70~80%가 인근 지역 주민이다. [서울대 박물관 제공]

3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법무사 시험을 준비하는 이태영(42.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씨는 같은 동네에 있는 한국외대 도서관에 '출근'해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책과 씨름한다.

면학 분위기도 좋은 데다 에어컨까지 가동돼 사설 독서실 못지않다. 이씨가 이처럼 대학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학교 인근 주민들에게 문호를 개방한 대학 측의 배려 덕분이다.

서울 신림동에서 자취하는 직장인 배모(30)씨는 한 달에 두 번 서울대를 찾는다. 생활필수품을 구입하기 위해서다. 그는 "문구류와 치약.라면 등이 시중보다 10~20% 싸 한번 가면 3만~4만원어치씩 산다"고 말했다.

'담 허물기'사업을 비롯해 대학들이 최근 주민들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대학 시설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이용료가 저렴하면서도 양질의 서비스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서울대 박물관이 94년 개설한 수요 교양강좌 수강생 200여 명 가운데 70~80%가 인근지역 주민이다. 정용국 학예사는 "2003년까지는 수강생이 140명 정도였으나 올해는 주민들이 몰려 200석이 꽉 찬다"고 말했다.

지난 4월 한국외대가 일반인을 위해 문을 연 영어 클리닉은 하루 200여 명의 시민이 이용하고 있다. 시민들이 영어회화.문법 등에 대한 궁금증을 e-메일이나 전화 등을 이용해 질문하면 교수.강사가 무료로 답해 주는 방식이다.

경북대 어학당 영어강좌에 등록한 직장인 김수정(32)씨는 "하루 1시간씩 주 5일 동안 배우는 데 수강료가 월 5만원이었다"며 "강의 내용도 학원보다 낫다"고 말했다.

숙명여대에서 건강체력실은 한 달에 1만7000원을 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학교 식당을 이용하는 주민들도 많다. 1500~2500원으로 균형 잡힌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연세대의 경우 주말에 학교 식당을 찾는 가족 단위의 방문객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식당 직원 강은주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토요일에는 학생들뿐이었는데 요즘은 가족 손님이 자주 눈에 띈다"고 말했다.

직장이 없는 '백수'들이 많이 찾는 인터넷 카페 '백수회관'의 주인장 주덕한(37)씨는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에게 대학 식당은 구세주"라며 "홍익대 교직원 식당과 이화여대의 샐러드 바를 강력 추천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캠퍼스를 이용하는 주민들이 늘면서 쓰레기 처리 등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대 경비원 전종선씨는 "주말엔 쓰레기 치우는 게 일"이라며 "주민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시설물을 이용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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