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형사민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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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찰은 부당하게 취급된 형사민원사건을 재조사, 억울함을 가려주는「수사이의조사반」을 운영키로 했다.
신임 안응보 치안본부장은 오는 25일까지 치안본부장실과 전국시·도경찰국장실에 설치, 민원인이 일선경찰의 수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경우, 상급관서가 재조사를 해서 편파수사등 잘못이 있었는지를 가려내겠다고 밝혔다.
경찰의 이러한 조치는 부당한 인권침해를 사전에 방지한다는 점에서는 물론 경찰의 공신력을 높이고 시민과 경찰의 거리를 좁힌다는 뜻에서도 잘한 일이다.
가뜩이나 우리사회에는 죄가 없어도 경찰관을 보면 움찔해지고 경찰서나 파출소 앞을 지나면 위축되는 경찰기피현상이 뿌리깊다.
경찰의 직능은 물론 사회질서를 바로 잡고 시민에 봉사하는데 있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경찰에 호소하고 경찰은 시민들의 이러한 호소를 성의껏 처리하는 것을 임무로 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못했다.
일선 경찰관들의 법률지식부족과 일반적이며 강압적인 수사태도가 숱한 민원의 원인이 되었음은 누구도 부인 못할 사실이다. 경찰은 억울한 민원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는커녕 그들을 도리어 궁지로 몰아넣거나 심지어 이를 기화로해서 금품을 요구하는 사례까지 비일비재했다. 경찰에 맡겨진 본분을 망각하고 뒷거래에나 눈을 파는 경찰이 있는 한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회복될 수 없는 일이 되고 만다.
새 헌법은 인권의 보장을 과거 어느 헌법보다도 강조하고 있다. 기본적 인권의 불가침성을 명문화 한 것을 비롯해서 적부번제도의 부활, 자백의 증거능력 제한, 형사보상청구권의 보완등 인권신장을 위한 여러 조항을 신설하고 있다.
법이나 제도가 아무리 훌륭해도 이를 집행하는 기관이 법의 정신에 충실하지 않거나 재량권을 남용한다면 법이나 제도의 뜻은 퇴색하고 만다. 특히 수사일선을 맡고 있는 경찰의 역능은 그래서 중요하다.
설사 사건이 대법원까지 올라가 무죄판결을 받는다해도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당사자들이 받는 고통이나 정신적·물질적 피해는 보상받을 길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과거에도 수사에 이의가 있을 때 이의 재조사를 요구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 명령은 결국 당초 수사를 맡았던 수사팀에 떨어지기 때문에 공정한 재조사는 기약될 수 없을 뿐 아니라 때로는 민원인에 대한 경찰의 보복이란 엉뚱한 부작용까지 생겼다.
치안본부는 수사1과장이, 시·도경은 수사과장이 직접 맟아 재수사를 하기로 한 이번 조치는 이런 제도상의 허점을 제거한 것이며, 경찰 스스로가 자신이 안고 있는 치부를 과감히 도려내겠다는 결의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일선 경찰의 수사에 대해 이의가 생기는 것은 대개의 경우 경찰이 약자보다는 강자, 일반서민 보다는 힘있고 재력있는 사람들 편을 드는데 원인이 있다.
따라서 경찰의 수사이의 조사반은 모든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하되 서민이나 상대적인 약자의 이익에 충실한 방향에서 운영되기를 당부하고 싶다.
시민들은 자신의 권익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켜야하고 당국이 이러한 시민정신을 고무할 때 우리의 궁극적 목표인 민주사회가 이룩될 수 있는 것이다.
거듭 지적하거니와 좋은 제도란 하나의 관행으로 뿌리를 내릴 때까지 꾸준히 시행되어야 하고 성의를 다해 가꾸어 나가야 한다. 「수사이의조사」제도 또한 일시적인 구호나 행사에 그치지 말고 다소 귀찮고 번잡스럽더라도 경찰과 국민의 거리를 좁히는 제도로 정착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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