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위한 소형 압력솥 거꾸로 해외 시장 공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1면

"1.8ℓ짜리 소형 압력솥을 개발해 주십시오. "(휘슬러코리아 김정호 사장.사진)

"닭 한 마리도 안 들어갈 크기인데, 누가 사겠습니까. "(독일 본사 관계자)

"한국에서는 2~3인분 밥을 지을 때 씁니다. "(김 사장)

"2.5ℓ짜리가 있지 않습니까. "(본사 관계자)

"한국 소비자는 꼭 맞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시장을 공략하려면 1.8ℓ짜리가 필요합니다. "

주방용기 전문회사인 휘슬러코리아의 김 사장은 2004년 초 독일 본사에 연락해 이런 얘기를 나눴다. 본사를 설득한 끝에 개발하기로 최종 결정됐다. 6개월의 개발과 또다시 6개월의 안전 점검을 거쳐 올 2월 국내 시장에 나왔다. 김 사장은 "독일에서 1차로 가져온 압력솥이 적어도 두 세달은 걸려야 팔리리라 예측했는데 한 달 만에 동날 정도로 인기였다"고 말했다. 이 소형 압력솥은 최근 휘슬러 지사가 있는 일본과 중국에서도 팔기 시작했다.

한국 문화를 잘 알면 그만큼 마케팅에 유리해서일까. 휘슬러코리아가 한국인이 사장으로 부임한 뒤 한국형 제품들을 잇따라 내놓으며 쑥쑥 크고 있다. 이에 더해 한국형으로 개발된 제품이 해외로까지 퍼지고 있다.

김 사장이 부임한 것은 2003년 11월. 그 전에는 독일인이 대표를 맡았다. 김 사장은 휘슬러에 온 뒤 소형 압력솥을 비롯해 혼수용 세트 등의 상품을 본사에 제안했다. 때로는 한국 문화와 시장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A4용지 300장 분량의 보고서도 보냈다고 한다. 본사도 치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 김 사장의 요구를 들어줬다. 이렇게 내놓은 상품들이 히트하면서 2002년과 2003년 매출이 연속 감소했던 휘슬러코리아는 지난해는 35%나 성장했다. 김 사장은 "'한국에서 통하면 세계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알고는 본사에서 한국 소비자들의 수준이 세계 최고라고 인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글=권혁주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