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서] 시 한 수로 대신하는 중국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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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광종 특파원

"끼니마다 시(詩)요, 가는 곳마다 제자(題字, 휘호 등 필적을 남기는 일)였다."

4월 대만 국민당 주석으로선 양안(兩岸, 중국과 대만) 분단 이후 최초로 중국을 방문해 선풍을 일으킨 롄잔(連戰)의 부인 팡위(方瑀) 여사의 말이다.

그는 "식사 때마다 오리고기 요리가 오르듯이 가는 곳곳마다 시를 주고받아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그는 대륙 방문 전 고시(古詩)에 정통한 선생까지 모셔 '특별 과외'를 받았다. 딸에게서 "대륙 사람들은 시를 다퉈 내놓는 데 그에 맞춰 시를 읊지 못하면 창피를 당한다"는 충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펼치는 정치 마당에선 시와 사(詞) 등 전통 문학작품의 정수가 흩날리기 일쑤다.

60년 전 마오쩌둥(毛澤東)이 충칭(重慶)으로 날아가 장제스(蔣介石)와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국공(國共) 담판을 벌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신화사(新華社)에 해당하는 신화일보(新華日報)는 당시 마오와 장이 만나던 날 마오의 시를 게재했다.

"이처럼 아름다운 강산에 숱한 영웅들이 허리를 굽혔으니(江山如此多嬌, 引無數英雄競折腰) … 영웅은 모두 가버렸지만 풍류의 인물을 꼽으려면 오늘을 지켜 보아야 할 것이다(俱往矣, 數風流人物, 還看今朝)"

역사적인 국공 합작에 나서는 마오의 영웅적인 심리를 시로 표현한 셈이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도 매년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폐막일에 개최하는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시구를 선보이곤 한다.

총리 취임 후 가졌던 회견에선 "지난해 오늘 대만이 떨어져 나갔으나 조국의 산하는 반드시 하나 될 것(去年今日割臺灣, 山河終一統)"이라는 대만 애국 시인의 시를 읊었다.

그는 또 "산은 흙과 돌멩이를 받아들이니 그로써 그 높음을 이뤘다(山不辭土石, 故能成其高)"는 관자(管子)의 경구(警句)를 암송하기도 했다.

멋과 정취가 넘치는 중국 정치인들의 시는 감성으로서 남을 자신의 경계로 끌어들이는 독특한 화술(話術)이다.

멋으로만 중국 정치판의 시를 받아들였다가는 큰코 다치기 십상이란 지적은 이래서 나온다.

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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