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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3)제76화 화맥인맥(32)|「총후 미술전」|월전 장우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1941년 일제는 중국침략에 이어서 이번에는 미국과 영국을 상대로 겁도 없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이때부터 모든 전람회와 작품발표는 일제의 전쟁구호인「신동아건설, 성업달성을 위한 총후의 정신운동 기여」라는 대전제가 붙어야 했다.
이미 40년에 결성된「문인서도 연구회」는 전쟁이 나자 첫 번째로「내선유지의 단합」이라고 표현한 문인화전을 열어야했다.
한규복 김용진 고의동 정병조 안종원씨 등 유명 서화가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출품했다.
42년10월에는 전람회의 수입을 육·해·공군에 헌납하기 위한 달갑지 않은 제1회「조선남화연맹전」이 개최되었다.
이때 억지로라도 그림을 내지 않으면 안되었던 지명출품자는 윤희순 노수현 백윤문 배염 박승무 이상범 이용우 이한복 이응노 이승만 고희동 허백련 김은호 허건 김용진 김기창씨 등이었다.
남화연맹전을 열고 불과 한달 후인 11월에는 화가들에게 또 하나의 멍에가 씌워졌다.
조선미술가 협회가 주최하고 총독부 정보과와 국민총력조선연맹이 후원하는 소위「반도총후미술전」이라는 고질적(고질적)인 전람회가 생겨났다.
선전심사위원인 이당(김은호)선생과 청전(이상범)은 불가피 위원으로 추대되고 선전의 추천작가인 운보(김기창) 김인승 심형구도 초대작가로 지목되어 그림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총후미술전은 42년부터 일제의 패망직전인 44년까지 3회 계속되었다.
전람회기는 해마다 1l월 초순, 장소는 삼월오복점(신세계전신) 정자옥(미도파 전신) 삼중정(충무로 입구), 그리고 화신백화점이 전시장이었다.
나도 여주에 소개해 있으면서 총후미술전에 작품을 내야했다. 여주까지 출품을 지시하는 통지가 왔기 때문이다.
이 전시회는 유난히 시국색이 질은 작품을 요구, 화가들이 어떤 그림을 그릴까하고 부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수화를 그려도 군인들이 배낭을 짊어지고 걸어가는 모습을 넣어야 했고, 농가의 사립문에도 공연스레 일장기를 꽂아야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나도 현실적인 그림을 그리기 싫어서 머리를 쥐어짜 불화『부동명왕』을 구상했다.
부동명왕은 대일 여래가 일체의 악마·번뇌를 항복시키기 의해 변화하여 분노한 모습을 나타낸 그림인데, 색은 검고 성난 눈을 하고있으며 왼쪽 눈을 가늘게 감고 오른편의 윗입술을 물고 있다.
오른손에는 강마의 검을 가지고 왼손에는 오라를 쥔 채 큰 불꽃 속에서 대일 여래가 돌 위에 앉아있는 불화다.
한60호쯤 되는 작품이었는데 여주에서 서울까지 운반이 문제였다.
그렇다고 버스에 실을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서울로 짐을 싣고 오는 트럭운전사에게 부탁해서 간신히 싣고 왔다.
그런데 운반 중에 비가 많이 내려 희부대 종이포장이 무색케 되었다.
서울에 도착, 종로4가 제일극장 앞에 내려 현초(이유태)집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펴보니까 비에 젖고 다른 짐에 눌려 도저히 그 작품을 그대로 출품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 같은 사정을 글로 써서 출품 못하게된 이유로 제시했다.
총후미술전 뿐 아니라 전쟁말기에는 선전도 현실적인 그림을 요구했다.
심지어는 이당 선생이 44년 23회 선전에 심사 참여 무 심사작품으로 낸, 아들은 하모니카를 불고 딸은 창가에 서서 창가를 부르고 있는 것을 어머니가 흐뭇하게 바라보는『화기』라는 그림이 성전을 나타내는 시국화가 아니라고 문제로 삼았다.
이당선생 작품이 도마 위에 올랐을 때 일본조각가 삼목홍이『군인들이 휴가 왔을 때 가정의 평화스런 모습을 그린「화기」를 대하면 마음이 착 가라앉을 것이다』고 변호해서 말썽이 안되었다.
이런 전람회 말고도 시국색을 강조한「성전미술전」「국민총력 포스터전」등이 있었다. 엎친 데 덮친다고 한국화가는「김채회」라는 여성단체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김채회는 윤덕영 부인(회장)과 딸이 주동이 되어 한국가정에서 패물과 금붙이를 헌납 받던 어용단체였다.
윤덕영 부인과 말이 헌납 받은 금붙이를 용산에 있던 조선군사령부 심택사단장에게 바치는 것을 사진으로 찍어다가 이당 선생에게 그대로 그리도록 해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서양화가 김인승씨 에게는 유기(놋쇠) 공출하는 장면을 묘사시켜 저들의 선전도구로 삼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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