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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실업자의 창가에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임술 새해가 실업자의 창가에도 떴읍니다. 남들처럼 가슴 부풀 필요성 조차도 느끼지 못한 채 여느 때와 같이 텔레비전 채널만 뒤틀다가 또 하루의 종점에 섰읍니다.
이날 이때까지 누군가가 끌어주기만 막연히 기다려왔고 또 외면하는 듯한 사회에 호소력마저 갖지 못하여 패기로만 지탱해 보려했고, 자신의 반성에 앞서 남을 탓하려 들고, 자신에게 매질하기에 앞서 남을 시기하려 하고, 조그만 기쁨에도 자제하지 못하여 스스로를 악용하였고, 사소한 일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며 허황된 자존심만 가져왔으며, 강한 열등의식이 북받칠 때면 현실에서 도망하려는 도피행각까지 벌여왔던 것입니다.
언제나 이 시간이 되면 차가운 적막이 현실에서 달아나려는 운명과의 결탁을 강요해오곤 했다.
오늘 여기 스무남짓의 길을 더듬는 젊은 청년은 어두운 오솔길에 한가닥 빛을 보았읍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에겐 복이 있고, 마음이 허황된 자에겐 마음을 밝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나 봅니다. 어느 부유한 가정의 도령처럼 밝혀주고, 끌어주고, 밀어주는 이 없는 자신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서두르지 아니하고 조급함 없이 내가 선 자리에서 스스로를 갈고 닦으면 광채는 자신의 몸으로부터 뻗어날 것이라는 깨달음입니다.
그러는 새에 자신의 등불조차도 되지 못한 그가 어느덧 타인의 길목까지 밝히고 있으리라는 확신입니다.
삶은 결코 쫓기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이끄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동천에 치솟는 임술 새 임년에는 성과의 치수보다도 노력의 치수에 눈길을 돌려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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