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팔고 빚내 연예기획사 차린 괴짜 교수님,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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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경북 경산시 대경대 교내 녹음실에서 작업하고 있는 유정우 교수. [경산=프리랜서 공정식]

집을 팔고 빚까지 얻어 차린 엔터테인먼트 회사. 소속 가수가 돈을 못 번다고 따져 묻지 않는다. 소속 가수와 연습생은 모두 지방 전문대 재학생들. 스타 가수는 없다. 틈이 나면 돈 되는 무대를 찾기보다 28만㎞를 달린 낡은 차를 타고 군부대 위문공연 등을 발굴하는 데 힘을 쓴다.

 이런 ‘말이 안 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서울 홍대 앞에 있다. 대구·경북 영어 앞자리, ‘The Korea’의 앞자리를 따서 만든 ‘TK엔터테인먼트’가 이런 곳이다.

 회사 대표는 버클리 음대 출신(영화음악 작곡 전공)의 경북 경산시 대경대 실용음악과 학과장 유정우(49) 교수. 14일 만난 그는 “영리에만 목적을 두는 일반적인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보지 말고 미친 듯이 무대에서 노래 부르고 싶은 지방 대학생들의 꿈을 도와주는 재능기부 회사로 봐달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대경대 교수로 2010년 부임했다. ‘한 노래’하는 160여 명의 학생을 정식 교수로서 처음 만났지만 지방 전문대의 현실은 참담했다. 프로 가수로 데뷔하는 학생을 보기 힘들었다. 서울 유명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들어가지 못해 대부분 식당이나 공장에 취업했다. 가수로 무대에 세워주겠다는 유령 엔터테인먼트에 속아 사기 당하는 학생도 많았다. 소속사 없이 ‘아마추어’라는 딱지를 달고 밤무대를 전전하는 학생들까지 있었다.

 “아무리 지방이고 전문대 학생들이지만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대를 만들어줘야겠다고 결심했죠.”

 통장에 있던 5000여만원을 꺼내 대구 시내 한 음악학원 연습실을 빌렸다. 전공 학생 20여 명을 발굴해 2011년 7월 TK엔터테인먼트를 차렸다. 노래 봉사부터 시작했다. 대구 도심에서 거리공연을 하고 대구·경북의 경로당 등을 찾아가 위문공연을 했다.

 욕심이 생겼다. 지방을 벗어나 제대로 된 프로 가수 무대에 학생들을 세워주고 싶었다. 회사를 서울로 옮겨야겠다고 결심했다. 건물을 얻고, 각종 음악장비를 채우기 위해 목돈이 필요했다. 대구 아파트와 서울 여의도 아파트를 정리했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투자형식으로 빚까지 냈다. 은행 신용대출도 받았다. 이렇게 10억원을 마련했다.

 지난해 8월 TK엔터테인먼트는 서울 서교동에 260㎡짜리 사무실을 장만했다. 덩치를 더 키웠다. 러브홀릭 멤버인 가수 강현민씨에게 재능기부 회사라는 설립 취지를 설명하고 작곡가로 참여를 요청해 승낙받았다. 유 교수의 뜻을 알게 된 가수 소찬휘도 돕겠다고 나섰다. 댄스곡 ‘냉면’을 만든 작곡가 김영득씨와 오근탁씨도 참여했다. 학생 7명을 가수로 데뷔시켰다. 앨범 제작비로 2억원 정도 돈이 들었다.

 회사 설립 4년째를 맞았지만 TK엔터테인먼트는 여전히 고전하고 있다. 수익은 거의 없다. 밥값, 차비, 의상비 등은 계속 들어간다. 이에 그는 아예 학교 월급 통장을 회사 통장으로 자동 이체했다.

 이러면서도 여전히 상업적으로 돈만 바라보고 가지 않는다. 소속 가수, 연습생들과 서울로 진출한 뒤 벌써 20여 차례 군부대 위문공연을 다니고, 5차례나 경로당을 찾아가 노래봉사를 했다. 대구 시민들을 위한 무료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 학생들이 활짝 웃으며 노래 부르는 모습이 좋을 뿐입니다.”

 ‘괴짜 교수’라는 별명까지 붙은 그에게 최근 새로운 꿈이 생겼다. 장학재단을 만들고, 후진국을 찾아다니며 음악을 가르쳐주는 ‘해외 노래봉사’를 하는 것이다. “한 달에 딱 1000만원 이상만 수익이 발생하면 장학재단을 만들 겁니다. 소속 가수들과 해외로 나가 음악을 접하기 힘든 외국인들에게 악기나 노래를 가르쳐줄 겁니다.”

 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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