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거렁뱅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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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3년전 소위 작가나 화가 같은 예술가들에게도 세금을 물려야하는가, 면제해주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격렬한 공청회가 열리고 신문과 방송 등 매스컴에서는 연일 지상토론회가 열렸던 적이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이 격렬한 어조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주장했었던 것을 나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 아직까지 세금을 면제해 준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형평의 원칙에 벗어나는 것이며 밤낮을 산업전선 역군으로 피땀을 흘리는 근로자들도 매달 어김없이 월급에서 세금을 공제 당하고 있다. 그들이 무슨 특권층인가. 그들이 경제발전에 무엇을 기여했는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작가들이라고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고있었고, 간혹 예술단체에 근무하는 사람들이나 협회사람들만 입장이 입장인지라 가냘픈 목소리로 아직까지 작가에게 세금을 물린다는 것은 시기장조입니다라고 한마디 푸념할 따름이었다.
82년 새해에 들어서면서부터 모든 작가의 원고료에 세금의 발톱이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할퀴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세금을 내기 시작하는 이 무렵, 이 마당에 있어 다소 뒤늦은 감이 있지만 정정당당하게 작가에 대해 세금을 물리는 일이 얼마나 부당한(?)일인가 한마디쯤 밝혀두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첫째, 모든 작가와 시인들은 이미 세금을 내고있었다. 우리 나라 문인들은 90%이상이 시와 소실로 밥을 먹을 수 없어 다른 직장에 근무하고 있는데 이 근무에 따른 수당에서 이미 꼬박꼬박 세금을 공제 당하고 있었다.
둘째, 창작작업은 퇴직금과 승진이 보장되는 직업이 아니다. 작가는 오직 글을 쓸 때만 원고료를 받을 따름이며 글을 쓰지 않을 때는 분명한 실업자다. 작가는 소설실업주식회사의 직원도 아니며 오래 근무한다고 해서 부장이나 이사로, 전무로 승진하지도 못한다. 그들은 나날의 일일고용원이며, 임시고용원에 불과하다.
작가가 글을 쓸 때는 물론 예의도 있지만 대부분 인생전반 즉 20대 전·후반에 데뷔해서30대에만 정력적으로 활동하다가 40대 이후에는 쇠퇴기에 접어들기 마련인데 이때의 작업으로 노후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환갑 진갑을 넘은 할아버지 작가도 붓을 들지 못하면 단 한푼의 소득도 생길 수 없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득이 있을 때만 세금을 내면 되지 않은가. 그러니까 소득이 없을 때는 세금을 내지 않으면 되지 않은가. 물론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국가에서 작가들에게 퇴직금을 지불해주고, 노후수당을 지불해주기 바란다.
셋째, 이왕 세금을 내게 되었으므로 단단하게 말하고 싶은 말 한마디는 작가의 직업이 과연 비생산적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얼핏보면 작가는 하릴없이 게으르고, 낮잠이나 자고, 출근도 아니하고 원고지나 끄적이면 돈이 생기는 편한 직업처럼 보이고, 사회에 쓸데없는 불평이나 일삼는 불평주의자로 보이기 십상인데 이제부터는 무시하지 말기 바란다. 이왕에 세금도 내고 꿀릴 이유도 없으니 공연히 싸잡아 작가들을 비난하려 들면 가차없이 쥐어박아 코피를 터뜨려 놓을 것이다.
작가는 여러분들이 먹다 남은 일상의 찌꺼기들을 매일같이 동냥을 나서 거둬들이고 그 비럭질한 말(언)의 동냥을 되버무려 여러분 시대의 식탁 위에 풍성하게 올려드리는 거렁뱅이들인 것이다. 이 거렁뱅이들을 사랑하라! 이 거렁뱅이들이 없다면 여러분들의 식탁은 삭막한 사막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최인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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