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챙이 기자 때의「기막힌 사연」이 10년만에「뿌듯한 보람」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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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신문기자의 하루하루라는 게 초읽기에 몰리는 바둑기사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생활의 굴레가 이 모양이고 보면 원고지 한 장을 메우기 위해 담배 반 갑 태우기는 허다해도 잠깐이나마 눈을 감고 옛일을, 추억의 얼굴들을 떠올려 연민의 미소 한번 짓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10년 전쯤의 사연이라면 퇴색한 스크랩북을 들추기 전엔 망각의 늪이나 다름없다.
바로 오늘, 한 젊은 목사의 갑작스런 출현은 톱날 틈바구니 같던 생활에 모처럼 옛날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수원의 이상기군-. 촛불이 타 들어가듯 몸 속의 피가 매일같이 죽어 가는, 발병률 1백만 분의1이라는 재생불량 성 빈혈증환자. 당시 나이 열 아홉의 졸업을 앞둔 고등학생이었다.
1주일에 한번 맞는 5천 원의 피 값을 댈 수 없어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앞에 무방비였던 이 젊은 생명을 사회면 머릿기사로 썼던 게 꼭 10년 전 올챙이 경찰출입기자 때였다.
경찰서 형사계, 종합병원의 응급실·사체 실이 집 골목보다 더 낯익던 시절, 환절기 감기환자라도 몰렸나 싶어 세브란스병원 내과과장 채응석 박사 방을 노크했을 때 이 군을 발견했다.
피하출혈까지 겹쳐 온몸이 멍 투성이 인 이 군의 벗은 몸을 살피던 채 박사로부터 희귀 난치병이란 말을 들었을 때 기사감각이 답답했던 올챙이 기자도 뭔가 잡히는 게 있었다.
이 군에 얽힌 기막힌 사연을 뺀 채 희귀 성 질병에 초점을 맞춰 썼던 기사는 세 번이나 데스크 휴지통에 박혀 버렸다.
이 군이 살던 수원까지 두 번의 출장 끝에 자신이 읽어도 코끝이 찡한 머릿기사로 빛을 보았고 각계의 온정과 격려가 봇물 터지듯 밀려들었다.
『자네가 한 생명을 살릴 거야. 기자생활을 끝마친 뒤라도 영원히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걸세.』K부장의 그 때 그 격려가 화살처럼 박혀 온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죽음을 눈앞에 두었던 이 군은 30세의 아기 아빠로, 또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목사가 되어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그 시절 올챙이 기자도 차장이 되었다.
과거는 슬펐든, 괴로웠든, 추했든 간에 지나고 보면 다 아름다운 것이란 생각이 든다.

<고정웅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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