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한국산 위력에 … 외제들 '틈새가전' 파고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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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한국에 진출한 유럽 최대 가전업체인 스웨덴의 일렉트로룩스는 한국에서 드럼세탁기를 팔고 있지만 판매량은 미미하다. 세계 냉장고 및 세탁기 시장에서 1.2위를 다투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삼성전자.LG전자.대우일렉트로닉스 등 국내업체에 밀려 힘을 못 쓰고 있다. 이 회사는 대신 거실 가전(청소기)이나 주방 가전(콤팩트 오븐, 커피메이커, 바비큐 그릴 등)에 주력하고 있다.

외국계 가전사들이 국내업체의 기세에 눌려 한국 시장을 뚫기 쉽지 않자 전략을 바꾸고 있다. 삼성.LG전자와의 경쟁을 피해 커피메이커나 청소기 등 소형 가전에 치중하고 있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수입 가전이 '부의 상징'처럼 됐으나 이제는 옛일이 돼 버렸다.

◆ 외산 가전 '아, 옛날이여'=외산 가전은 불과 5~6년 전만 하더라도 이른바 프리미엄급 가전 시장에서 한국 업체들을 압도했다. 한때 월풀.메이텍.GE 등의 제품이 양문형 냉장고나 드럼형 세탁기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90년대 말부터 국내업체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상황은 급반전했다. 국내업체는 한국인 생활을 고려하지 못한 외산 가전의 약점을 파고들면서 가격 및 제품 경쟁력까지 갖춰 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이런 상황은 최근 더욱 심해져 현대백화점의 경우 2003년 4% 정도를 차지하던 수입 세탁기 비중이 올해는 1.5% 수준까지 떨어졌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외산 가전 브랜드별로 독립 매장을 두었으나 최근에는 소니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브랜드를 통합했다.

◆ 소형 제품으로 공략한다=최근 수입 가전 업계의 가장 큰 특징은 주방 가전 브랜드의 잇따른 출시다. 일렉트로룩스 코리아는 최근 커피메이커, 소형 오븐, 바비큐 그릴, 토스터 등 소형 주방 가전 4종을 잇따라 선보였다. 이 회사 정현주 과장은 "소형 가전으로 한국 소비자들 사이에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필립스전자도 지난해 커피메이커.무선주전자 등으로 구성된 고급형 주방 가전 '뉴에센스' 라인을 출시한 데 이어 올해 초에는 스테인리스 재질의 주방 가전 '메탈 블랙퍼스트' 라인을 선보였다. 이 회사는 지난해부터 TV.홈시어터.오디오.비디오 등 영상.음향 가전의 비중을 줄이고 소형 가전, 조명, 의료 장비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프라이팬으로 잘 알려진 테팔(프랑스)은 오븐.그릴 기능을 갖춘 콤팩트형 전기 오븐을 출시했다. 100년 전통을 지닌 이탈리아의 생활 가전 브랜드인 드롱기도 최근 커피 머신 등을 앞세워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기존 소형 제품 사업을 더욱 강화하는 곳도 있다. 샤프전자는 지난해 매출 중 40%대를 차지했던 전자사전의 비중이 올해는 50%대로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세계 1위의 LCD TV 업체라는 점을 내세워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표 상품인 전자사전의 비중이 크다"고 말했다. LG전자 한국마케팅부문 윤인덕 차장은 "소형 가전 분야는 국내 대기업들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아 상대적으로 외국 가전 업체들이 뛰어들기 쉬운 시장"이라며 "이 시장에 외산 가전업체가 몰리는 것은 백색 가전 시장에서 국내업체들이 '절대 강자'가 됐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상.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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