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역 이 사람!] 문화 전도하는 귀농인 송성일씨 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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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성일(오른쪽 뒤)·유준화(맨 왼쪽)씨 부부가 자신들의 미술관에서 주민들이 그린 그림을 보고 있다. 봉화=조문규 기자

경북 봉화군 명호면 풍호1리 비나리 마을. 청량산이 곁에 있고 그 옆으로 이나리강이 지나는 곳이다.

'산나물 체험장, 숨쉬는 산책길, 마을회관, 정보센터, 산골미술관…'.

지난 3일 비나리 마을을 찾았을 때 산뜻한 이정표가 눈길을 끌었다. 비나리는 작은 계곡 양쪽으로 60여 호가 들어선 산자락 마을이다.

이 마을 혁신 전도사격인 경남 진해 출신의 송성일(43)씨가 서울에서 이곳으로 무작정 내려온 지 올해로 9년째다.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 한때 대기업에서 일했던 그도 주민들처럼 고추 농사를 짓고 있다. 검게 변한 얼굴과 손은 영락없는 농부의 모습이다. 하지만 송씨는 혼자만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산골마을을 살 만한 곳으로 바꾸는 일에 매달렸다.

그는 인터넷 홈페이지(binari.invil.org)를 개설해 지난해 10월부터 마을의 주산물인 고추를 전자상거래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전자 상거래를 통한 마을 전체 매출액이 아직 1000만원이 안 돼요. 하지만 자신 있습니다."

그는 틈만 나면 주민들의 소득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을 찾는다.

이나리강 래프팅 손님을 마을로 유치하고, 인근 청량사 등에 이곳 농산물을 전시해 판매한다. 친환경 감자를 재배하는 것도 계획 중이다.

송씨 집 옆엔 지난해 문을 연 20평짜리 미술관이 있다. 농림부가 2002년 비나리를 녹색체험마을로 지정한 뒤 지은 최초의 산골 주민 미술관이다. 송씨가 화가인 아내 유준화(42)씨의 재능을 마을 가꾸기에 동원한 것이다.

개관전에는 많은 화가가 작품을 내놓았다. 미술관은 이미 마을 주민들의 휴식처가 됐다. 토요일엔 유씨가 지역 어린이들에게 강좌를 열고, 일요일엔 주민들이 미술치료사와 함께 대화를 나눈다. 2003년에는 행정자치부의 정보화마을로 지정돼 정보센터가 들어서고 컴퓨터 11대도 설치됐다.

완고하던 노인들도 태도가 달라졌다. 머잖아 떠날 줄 알았던 송씨가 주민들과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마을을 바꾸고 농사에 팔을 걷어붙였기 때문이다. 유씨는 "개관전을 찾은 노인들이 우리라고 이런 문화생활을 못하란 법이 어디 있느냐며 뿌듯해했다"고 말했다.

송씨는 요즘 또 다른 문화운동을 준비 중이다. 그는 '청량산문화연구회'를 만들어 1년에 두 차례 주민들에게 나눠줄 잡지를 만들고 있다. 봉화군의 지원을 받아 그동안 맥이 끊긴 청량산 공민왕당 동제(洞祭)를 부활시킬 준비로 바쁘다. 이는 고려 때 홍건적의 난으로 청량산으로 피신했던 공민왕을 모시는 행사다.

이 마을 신종범(52) 이장은 "송씨 부부가 들어온 이후 비나리는 봉화군에서 유일하게 주민 수가 늘고 있다"며 "누구라도 한번쯤은 살고 싶어하는 마을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봉화=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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