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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國情院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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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정보는 살아 있다. 정보는 끊임없이 대화하고 경쟁하며 진화를 거듭한다. 그들의 목표는 안팎의 적으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는 일이다. 잘 훈련된 수천명의 전문요원들이 세포처럼 활발하게 움직이는 국가정보기관은 거대한 생물체와 같다.

정보기관의 존재 양식은 스스로를 감추는 것이다. 적의 눈에 띄지 않고 적에게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생물체는 때로 존재를 드러내며 난폭한 야수로 돌변한다.

정보기관이 공동체의 믿음직한 수호자가 되느냐, 공동체의 가치를 파괴하는 야수가 되느냐 하는 것은 정보기관장의 전문성과 도덕성에 달려 있다.

중앙정보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으로 40년간 진화한 국가정보기관의 중추신경은 대부분 군 출신이었다. 고영구 국정원장을 포함해 27명의 정보기관장이 있었는데 육사 출신이 20명이고, 민간인은 7명이다.

군 출신들은 간첩을 잡는 데 능력을 보였지만 비참한 운명에 처한 경우도 많았다. 김형욱과 김재규는 최고 권력과 갈등을 빚다가 실종되거나 사형당했고 김계원.전두환.장세동.권영해는 옥살이를 했으며 이후락은 '김대중 납치 사건'으로 오명을 남겼다.

정보 전문가를 자부한 다수의 군 출신은 거대한 생명체의 세포들로부터 자극을 받고, 그들을 통제하고 명령을 내리면서 정보세계와 권력세계를 넘나들었다. 전문성과 조직 장악력에 대한 과신이 비극을 낳았다.

반면 민간인 출신인 신직수.노신영.배명인.서동권.김덕.신건은 대체로 정보기관장의 법적 한계를 지키려 했다. 모두 법대를 나왔는데 이들의 '준법 관념'이 무리하지 않은 기관 운영과 관련 있는 것 같다. 아웅산 폭파 참사, 김일성 사망 정보 같은 것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정보 실패 시비가 일기도 했다.

"눈빛만으로도 지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국정원장의 조직 장악력과 전문성을 민간인 출신이 갖췄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그들이 정보기관의 중추신경을 맡았던 시기에 거대한 생명체가 덜 난폭하고, 국가 공동체에 덜 부담을 줬던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법조인 출신인 고영구 신임 원장의 전문성과 이념 편향에 대해 국회 정보위가 이의를 제기했다. 高원장은 자칫 맹수에 잡아먹히는 조련사 신세가 되지 않도록 냉엄한 현실주의자가 되길 바란다. 국회는 高원장의 도덕성에서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 만큼 일단 그가 국정원을 어떻게 이끌어 가는지 지켜 보는 게 상식이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