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하는「정신문화연」|수뇌부의 전격 집단사표가 있기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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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고병익원장 김대환부원장 등이 22일 갑자기 이사회에 사표를 제출함으로써 정문연은 또 한차례 진통을 맞고 있다. 김부원장의 사표는 23일 반려되었다.
이 같은 돌연한 사의는 이규호문교부장관이 연구원을 다녀간 직후에 이루어 졌다. 이장관은 연구원에서 정문연이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정신문화창조에 충분히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정문연은 고위층사이에서 연구원의 운영방침과 연구방향을 놓고 계속적인 이견을 보여왔는데 학계는 이번 조치가 이러한 불협화음이 수습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장관은 23일 이 같은 임원진의 사표제출 이유에 대해『지난번 정부기구를 축소개편한 것과 같은 차원에서 정부출자로 운영되는 정문연을 효율적으로 개편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힘으로써 이 연구원의 기구 및 기능이 대폭 개편될 것임을 비쳤다.
문교부쪽 설명에 따르면 내부에서의 불협화, 인문과학과 사회과학분야간의 업무방향을 둘러싼 대립, 연간예산 60억원의 효율적인 집행문제등을 일단 점검해볼 시점에 와있으며 재정비를 위한 계기를 만들기 위해 사표를 받았다.
지난 78년 6월 개원이래 정문연은 연구원의 진로와 연구테마를 둘러싸고 마찰을 빚으며 몇 차례의 인사파동을 치러 온 것도 사실이다.
학계는 이러한 현상이 아직도 미완성인 연구원의 방향정립문제와 관주도의 운영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풀이한다.
「한국학의 총본산」이란 기치를 내걸고「한국문화의 정체를 깊이 연구하고 비해 한국의 가치관을 정립할 목적」으로 설립된 정문연은 그동안의 실적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뚜렷한 방향의식을 못갖고 있다고 비판하는 상태다.
그동안 정문연의 기능이 순수「연구원」이냐「연수원」이냐의 비중이 바뀜에 따라 방향감각이 흐려진 채 시계추운동을 벌여온 감이 있다고 일부 학자들은 지적한다.
이러한 변동은 다시금 정치상황의 변동과 정책입안자의 신념에 의해 더욱 그 진폭을 더한 감이 없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정문연의 일부 성향이 지나치게 권력지향적이었다는 점과도 떼어서 해석하기 어렵다.
한쪽에서는 순수국학을 연구하는 전당으로서 정문연을 발전시켜가려고 하는가하면 다른 한쪽에선 정부시책에 부응한 국민의 정신과 의식개조운동등을 추진하는 본산으로 방향설정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여기에 곁들여 중요하게 지적되고 있는 점은 학계의 고질적인 파벌의식이다. 이것은 일의 우선순위와 객관성을 깨뜨리고「주의의식」을 저해하기 때문.
이러한 상황속에서는 계속되는 기구개편 작업이 무위로 돌아가고 정문연의 방향도 상실되게 마련이라고 학계에선 우려하고 있다.
어쨌든 년초를 전후하여 또 한번의 기구개편에 이어 인사이동이 단행될 전망이다. 또 이규호장관이나 이상주 청와대교육문화담당수석비서관등 고위당국자들이 정문연출신인 만큼 누구보다 연구원사정에 밝다.
정문연이 맞은 이 진통이 새 출발의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정문연은 개원이래▲한국학문헌자료의 수집·정리·간행▲한국학국제회의 개최▲한국학대학원 설립▲민족대백과사전편찬▲국내외 관련기관과의 연구협력 및 지원▲사회각계 지도급 인사와의 공동 편찬등 사업을 펴왔다.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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