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문의 스포츠 이야기

스포츠와 여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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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종문
프로야구 NC다이노스 운영팀장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보십니까. 최근 영화에선 마지막 장면이 지나고 ‘끝(The End)’이라는 글자를 못 본 것 같다. 과거엔 끝이라고 뜨면 바로 영화관 불이 켜졌고, 조용한 객석은 가을 운동회처럼 야단법석이 됐다. 요즘은 여운이 남아 사운드트랙을 음미하며 지난 장면을 되새기는 영화팬이 부쩍 늘어났다. 감독이나 제작사가 ‘디 엔드’를 띄우지 않는 것도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눈물·희열·분노 같은 감정을 차분히 정리하도록 배려하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감정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말이다. 가끔은 울컥한 감정을 다스리려 엔딩 크레딧까지 훑다 보면 숨은 그림 찾기처럼 영화 제작에 담긴 깨알 같은 재미를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엄숙함과 절제를 요구하는 클래식 음악 공연장도 그렇다. 마지막 음악이 멈추고 세상이 정지된 듯한 찰나의 순간 지휘자, 연주자, 관객이 저마다 꿈꾸던 천상에서 현실로 내려오는 시간이다. 물론 그새를 못 참고 삐져나온 박수 소리에 가끔 김빠질 때가 있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몸끼리 부딪치는 거친 파열음, 역전 드라마의 짜릿한 환호만이 스포츠를 보는 목적이 아니다. 반대편에 선 패자의 눈물에 공감하고, 고단했던 그들의 여정을 존중하고 지켜봐 주는 것도 스포츠에서 얻는 특별한 감동이다.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마지막 장면이 몇 가지 있다. 2002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당시 김성근 LG 감독은 최종 6차전에서 패한 뒤 더그아웃을 떠나지 않고 삼성의 헹가래를 지켜봤다. 이후 김 감독은 그 순간을 놓고 “아픔을 씹어먹어야 했다”고 말했다. 2008년 SK-두산이 맞붙은 한국시리즈에선 두산의 간판 김현수가 마지막 5차전 9회 말 2아웃에서 땅볼 아웃됐다. 당시 시선은 한국시리즈 2연속 챔피언에 올라 샴페인을 들고 뛰어나온 SK 선수나 6년간 와신상담 끝에 권토중래한 김성근 SK감독을 좇지 않았다. 1루 베이스를 지나 우익선상까지 달려간 뒤 주저앉아 울던 김현수를 따라갔다. 응원 여부를 떠나 그의 가슴속 한을 달래주고 싶었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선 우리 대표팀의 신예 손흥민이 펑펑 눈물을 쏟는 장면도 팬들의 마음을 함께 적셨다.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이 이번 일요일(19일) 시작한다. 프로농구는 대장정을 막 시작했다. 박진감 넘치는 승부의 이면에는 눈물 젖은 스토리가 가득할 것이다. 방송 화면에서 볼 수 없는 순간들은 현장에서 울고 웃어야 보인다. 마지막 여운도 그렇게 해야 가슴속에 시(詩)로 남을 것이다.

김종문 프로야구 NC다이노스 운영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