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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재미동포 간질환 예방 활동 2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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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B형 간염은 동양인들이 주로 걸리는 병이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 미국의 한인들은 이 병에 대해 무지했고 제대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병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지만 더 큰 문제는 이들의 생활이 팍팍했다는 것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 정신이 팔려 몸속에 죽음을 부르는 바이러스가 자라고 있는데도 병원 한번 가볼 생각을 안하는 사람들이 많았지요."

간질환의 세계적 권위자인 한(이)혜원(69.미국 펜실베이니아 제퍼슨 의대 교수) 박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이름이 이혜원이지만 미국에서는 남편의 성을 따라 한혜원으로 불리기 때문에 '한(이)혜원'이라고 적은 명함을 갖고 다닌다.

61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 하버드대에서 레지던트를 마친 한 박사는 71년부터 필라델피아의 폭스 체이스 암연구소에서 B형 간염을 발견한 미국의 바루치 블룸버그 박사와 공동연구를 했으며, 88년 이후 제퍼슨 의대의 간질환예방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84년 한 박사는 간염 확산을 막으려면 병원에서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된다고 판단하고 직접 환자를 찾아다니기로 했다. 간염 백신이 발견된 이듬해에 한 박사는 교회가 미국 한인사회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는데 착안해 자신이 다니던 한국인 교회의 신자들을 대상으로 간염 검진을 실시했다. 예상대로 결과는 심각했다. 10명 중 1명이 간염균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보균자의 절반은 심각한 간 질환자였다.

이후 그는 백신분야의 전문가인 남편 한수웅 박사와 함께 매주 일요일 뉴욕과 워싱턴 등 미국 동부지역의 한인 교회를 찾아다니며 강연과 검진을 했다. 지금까지 찾은 교회가 400개가 넘고, 간염 검사를 한 사람이 2만4000여 명에 이른다.

한인 사회에 이어 중국계와 베트남계 사람들에게까지 관심을 넓혀나간 그는 간질환 연구 및 치료 분야의 업적으로 93년 서재필상을 받는 등 국내외에서 수많은 상을 탔다. 2003년에는 '자랑스런 펜실베이니아의 딸' 상을 받았다. 이 상의 수상자로는 모나코 왕비였던 그레이스 켈리와 흑인 성악가 마리안 앤더슨 등이 있다.

이화여고 출신(1957년 졸업)인 그는 지난달 31일에는 모교에서 수여하는 '자랑스런 이화인' 상을 받았다. 수상을 위해 지난주 초 입국한 그는 4일 출국한다.

글=왕희수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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