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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만나는 세계의 지성] 1. 헝가리 티보 메라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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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펑더화이(彭德懷)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왼쪽)과 김일성(오른쪽). 51년 북한 기자가 찍은 사진이다.

▶ 판문점 휴전협정 조인식 장면. 왼쪽부터 중국 대표, 미군 헌병, 북한 대표, 중국 군인. 당시 판문점은 간이텐트였다.

▶ 연합군에 포로로 있다가 개성으로 돌아온 북한군. 한 명이 트럭에서 내려 미군을 공격하려는 찰나다. 북한군은 북한 영토로 넘어오자 남한에서 제공한 옷가지를 벗어던져 속옷차림이 됐다.

다음달 세계적인 작가.석학들이 서울을 찾는다. 장 보드리야르, 오에 겐자부로, 르 클레지오 등 20여 명이 김우창.백낙청.현기영.고은.황석영씨 등 한국의 작가.평론가들과 '평화를 위한 글쓰기'를 주제로 토론을 벌인다. 5월 24~26일 열리는 행사 이름은 서울국제문학포럼. 대산문화재단.문예진흥원이 여는 국내 최대 규모의 문학 행사다.

본지는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가하는 인사 중 일부는 방한 전 현지에서, 일부는 서울에서 만나 '세계의 지성' 인터뷰를 싣는다. 첫 주인공은 본지 박경덕 파리 특파원이 만난 헝가리 문인 티보 메라이. 북한 측 종군기자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소설가로, 56년 프랑스로 망명했고 현재 파리 헝가리인권연맹 회장을 맡고 있다. 티보 메라이 인터뷰와 그의 소장 자료(아래 사진) 공개는 한국 언론으로는 처음이다.

"한국전쟁은 북한이 남침한 것이다."

티보 메라이(81)는 단언했다. 북한 측 종군기자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헝가리인은 한국 언론과의 첫 만남에서 "많은 역사가의 연구에 바탕해 한국전쟁은 남침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

다음달 첫 방한을 앞두고 한국 언론 가운데 중앙일보와 첫 만남을 가진 그는 인터뷰 내내 여유있는 모습이었다. 농담도 곧잘 던졌다. 그는 다음달 서울에서 백낙청(평론가).현기영(작가)씨와 함께 '한국적 평화 전통의 이상'이란 주제로 토론을 벌인다. 전쟁 당시의 경험, 특히 그가 목도한 북한 주민들의 고통과 위험을 말할 예정이다.

메라이는 "한국전쟁 개전 당시 북한에 있지 않아 어느 쪽에서 먼저 총을 쏘았는지는 보지 못했다"면서도 "많은 문서(연구문서)가 그것(남침)을 주장하고 있으며, 특히 몇몇 문서는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전쟁을 강력하게 주장해 스탈린이 승인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51년 8월부터 52년 11월까지 14개월여 동안 헝가리 신문 '사바드 네프' 특파원으로 북한에 파견돼 휴전협상과 관련된 취재활동을 벌였다. 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휴전협정 조인식이 열릴 때도 파견됐다. 그가 회상하는 조인식 장면이다.

"이승만.김일성.맥아더 모두 전쟁에서 이기기 원했기 때문에 셋 다 협정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휴전협정 조인식장은 아주 냉랭한 분위기였다. 서로 서명은 했지만 정말 차갑게 서명했다. 18개의 서명 문서를 교환하고 악수도 나누지 않은 채 10분 만에 모든 게 끝난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는 "북한 주민들은 휴전을 열렬히 환영했다"고 부연했다. "그때까지 거의 매일 계속되던 미군의 폭격이 그치면서 북한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고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는 설명이다. 특히 기억나는 일화를 물었다.

"북한내 포로 수용소에 미군 20여 명이 있었다. 그들 사진을 찍어 판문점에서 만난 미군기자에게 줬더니 그게 뉴욕 타임스에 크게 실렸다. 나중에 알았는데 미군 포로 모습을 미국 내에 처음으로 공개한 사진이었다. 이 일로 헝가리 신문사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메라이는 고국으로 돌아간 뒤에 한국전쟁과 관련한 책을 세 권 펴냈다. 그러나 헝가리 혁명 와중(56년) 파리로 망명한 뒤로 고국에 돌아가지 못했다. 그래서 서재에 있는 세 권을 다른 어떤 책들보다 귀하게 여긴다. 그에게 한국전쟁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물었다.

"(한참 뜸 들인 뒤)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뜻밖의 사건(아방튀르)이었다. 수백만 명이 죽었다. 그리고 지금도 분단 상황은 여전하다. 나는 왜 사람들이 이 전쟁을 시작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김일성은 자기 군대가 남한 군대보다 더 강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김일성이 기념비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메라이는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 "내가 아는 한 북한에 인권은 없다"며 "있다면 오직 한 사람, 김정일의 인권만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의 통일은 필연적"이라고 했다. "엄청난 독재자들도 결국은 다 지나가고야 마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아왔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아리랑' 곡조를 읊조린다. 한국전쟁 당시 헝가리 신문에 보도됐던 아리랑 악보도 간직하고 있다. 서울에서 무엇을 하고 싶냐고 했더니 "김치를 먹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때 먹어본 김치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 티보 메라이는

소설가이자 언론인. 1924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라틴문학을 전공하고 22세에 언론계로 뛰어들었다.

51년부터 헝가리 신문 '사바드 네프' 특파원으로 14개월간 한국전쟁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32세때 헝가리 총리 임레 너지와 함께 스탈린주의에 반대, 헝가리 혁명에 열중하다가 56년 파리로 피신했다. 소설 15권과 역사책, 시나리오도 썼다. 현재 파리 헝가리인권연맹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한국에서의 리포팅' '세균전의 진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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