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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그후의 이야기들(5)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베일속에 살다간 「천의 얼굴」-원효로갑부 윤경화노파(72)가 살해된지 5개월이 홀렀다.
금강산에서 득도한 생불, 관운점으로 역대의 재산을 모은 족집게 점술가, 때로는 유능한 경영인, 장학재단의 독지가, 이웃에게는 검소하고 자비로운 모습의 돈많은 할머니, 49개의 명예직을 갖고있는 사회활동가-. 당시의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숱한 제목들이 바로 이사건의 성격을 설명해 주고있다.
더구나 한노파의 죽음치고는 너무나큰 충격과 후유증을 남겼고 화제를 양산한 사건이었다.

<재산 모두 5억여원>
9만경찰의 명예에 씻을수 없는 일대오점을 남긴 사건수사담당 하영웅형사(40·전 서울용산경찰서)의 윤노파 예금증서 절취사건 또한 아직도 생생한 충격이었다.
서울 원효로1가 128의12 윤노파의 2층 적산가옥. 대지 1백10평을 뺑둘러 높다랗게 철책을 두르고 가까운 친척등 제한된 몇사람 외에 집안사정이 베일에 가렸던 윤노파 생전의 1인 성곽이다.
취재기자·수사관·동네구경꾼들로 연일 법석대던 이집은 인적이 끊긴채 암상한 담쟁이 덩굴가지가 한층 을씨년스런 빈집으로 변했다.
2개나 걸려있던 윤노파의 문패는 떨어져나갔다. 불단(불단)에는 겹겹이 먼지가 쌓였고 천장에는 거미줄이 걸렸으며 밤이 되어도 불빚하나 새어나오지 않는 유령의 집같이 되었다.
비명횡사한 윤노파와 가정부 강경연양(19)양녀 수경양(6)등 세사람의 망령이 마치 집안을 떠도는듯한 폐가가 되었다.
동네에서는 이미 흉가로 소문이났다.
9월부터 윤노파의 초카손녀 사위 조영복씨(34)가 이집을 임시로 관리하고있다.
그러나 조씨 자신도 1주일에 한번씩 문밖에서 둘러보는 정도다. 집안을 둘러보기가 겁이난다는 것이다.
관심을 끌었던 윤노파의 유산은 「10억∼20억원 정도」라던 소문과는 달리 훨씬 적은것으로 밝혀지고있다.
유가족들에 따르면 현재까지 밝혀진 윤노파의 재산은 대지1백10평짜리 원효로집(싯가1억1천만원), 고향인 전남순천의 대지 4백평의 주택(1억5천만원)서울정능 고여인이 살고있는 무허가 슬레이트집 (대지 31평)등 집 3채와 서울봉촌동의 임야 2천평, 한일은행 용산지점에 5천6백만원짜리 정기적금등 1억여원의 은행예금을 합해 모두 5억원 정도.
이같은 유가족들의 5억원유산 주장은 관할 용산세무서가 지난11월 과세대상 재산을 조사, 57%세율로 유가족에게서 징수한 상속세가 1억1천여만원이었던 사실로도 뒷받침된다.
이 재산의 상속인은 윤노파의 조카질녀등 14명.
민법상 상속순위는 첫째가 직계비속, 둘째는 직계존속, 그리고 세째 순위가 형제 자매. 윤노파의 경우 3순위까지 모두 사망해 해당자가 없다.
이때문에 네째 순위인「8촌이내의 방계혈족」인 두 오빠의 자녀 14명이 상속을 받게됐다.
물론 고여인의 남편 윤성렬씨(48·가명)도 상속을 받는다. 상속시기와 분배율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윤노파의 질녀 윤순자씨(33)는『상속인끼리 상속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를 보지 못했다』면서 『아무래도 고여인에 대한 재판이 끝난뒤라야 상속재산이 처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속세 1억천만원>
현재 윤노파의 재산은 조카 윤광태씨(37)가 실질적인 관리를 맡아 상속세등을 처리하고 있을뿐이다.
상속재산 처리가 늦어지는 바람에 윤노파와 함께 살해된 가정부 강양에 대한 피해보장비 2천5백만원도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고여인의 1심재판은 6회 공판까지 진행됐으나 판결은 해를 넘길 것같다. 고여인을 기소한 검찰은 물증없는 재판인만큼 재판부의 유죄심증을, 변호인단은 그 나름대로 무죄심층을 얻기위해 지금까지 20여명의 증인심문을 계속하고 있다.
공판때마다 방청석 맨앞줄에 자리를 잡는 고여인의 남편 윤씨는 지난9윌4일 직장(서울지검 모지청직원)을 그만두었다. 또 K대1학년에 다니던 둘째딸도 사건후 학교를 그만두었다.
윤씨는 퇴직금 7백만원을 생활비와 소송비용으로 모두 써버렸다고 했다.
업무상 횡령혐의르 구속기소된 하형사 또한 고여인이 썼던 그 법정에서 법의 심판을 받고있다. 『죄는 미워도 사람을 미워할수는 없다』며 옛동료들은 방청이 끝나면 『건강에 유의하라』고 위로하는 모습이 보인다.
하형사사건은 당시의 이상석능산경찰서장이 직위해제되고 김술산수사과장의 의원해임, 양운석형사계장·윤장호형사반장의 파면등 징계파동을 들고왔으나 경찰관들의 처우개선이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기도했다. <정순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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