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기가 날아와 체포인사 싣고가|바르샤바여행자들이 털어놓은 계엄하의 폴란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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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파리-주원상특파원】지난13일 계엄령선포를 전후해 폴란드에서 어떤일이 일어났고 또 벌어지고 있는지를 정확히 말할수 있는 사람은 현재로선 없다.
군대가 발행하는 신문이외의 모든 신문이 정간되고 통신과 거주이전의 자유가 전면 통제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국경밖으로 새나오는 소문만 춤출뿐이다.
그래서 17일밤10시30분 파리의 오를리공항에 도착한 폴란드항공 로트122기편에 바르샤바에서 실려온 승객들은 많은 서방기자들의 추적의 대상이 됐다.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는 폴란드에서 방금 돌아온 이들 1백50여명의 여행자들은 자신들이 보고들은 것을 털어놓았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가 18일 소개한 이들 여행자들의 증언을 간추려본다.
『나는 바르샤바공항 근처에 있는 친구집에 묵고 있었다. 15일밤부터 16일새벽까지 나는 한잠도 못잤다. 계속해서 이·착륙하는 비행기소음 때문이었다. 다음날 저녁 옆집에 사는 한 판사를 통해 그 비행기들의 정체를 알았다. 판사는 내게 그 비행기들이 여객기가 아니라 소련군용기며 통금시간동안 버스로 실려온 수백명의 폴란드인을 싣고 떠났다고 말했다. 행선지는 물론 소련이다.』(한남자학생)
『지난 4일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난들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우리는 각자가 주워들은 소문을 서로 교환했을뿐이니까. 신문도 없고 전화도 안되고 편지도 할수없으며 마음대로 자리를 움직일 수도 없다. 정보를 많이 알아도 위험하고 자신이 아는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일러주어도 안된다.』(한 스위스기자)
『사진찍은게 있으면 좀 달라고요? 지금 폴란드에서 사진을 찍다가는 당장 체포되고 5년동안 콩밥신세가돼요.』(한 고등학생)
『나는 13일새벽 5시30분 크라쿠프로 가기위해 바르샤바역에서 기차를 탔다. 기차는 얼마 달리지않아 예고도없이 황량한 들판에서 정차했다. 1시간반쯤 그대로 서있다가 일단의 경찰을 태운후 다시 출발했다. 크라쿠프에 도착하자 경찰들은 상당수의 쿠프에 도착하자 경찰들은 상당수의 승객들을 수갑을 채워 끌어내렸다. 누군가가 계엄령이 선포됐다고 내게 귀뜸했다. 정말 그랬다. 거리는 온통 군인들과 장갑차로 가득했다.
14일과 15일 크라쿠프거리에 전단이 뿌려졌고 상점은 모두 철시한채로 있었다. 크라쿠프에 있는 동안 시민들을 체포하는 광경을 보진못했는데 아마 통금시간동안에 체포작전이 이루어지기 때문인것같다.』(한 알제리인)
『12일 나는 새벽2시까지 친구집에서 놀고 있었다. 거리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계엄령선포소식을 들은 것은 다음날인 13일아침8시였다. 전화도 불통이었다. 사람들은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 이집저집을 서로 방문하며 정보를 교환했다. 많은 사람들이 체포됐다는 소식도 이렇게 구전을 통해 알았다. 체포될 염려가 있는 사람들의 가정에선 부인이나 어린애들이 이사실을 알리기위해 출타중인 가장을 찾아 허둥댔다. 체포작전에 동원된 것은 군대가 아니라 경찰이었다.』(한프랑스남자)
『13일아침 나는 친구집에 있었는데 갑자기 대사관으로부터 급한 호출령이 내렸다. 대사관에 도착해서 얼마안돼 폴란드군인들이 대사관에 나타났으며 바리케이드를 치고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폴란드시민들의 외국대사관안으로의 망명을 방지하기위한 것 같았다.
『바르샤바시내는 현재 슬픔으로 가득차 있고 평온하다. 그러나 그 평온은 위장된 것이다. 사람들은 거리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도 서로 말을 하지 않는다. 특히 외국인에겐 더하다. 아무일이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반대다.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징후를 여러곳에서 찾아볼수 있다.
자유노조의 전단이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고 거리의벽에도 계속 나붙는다.
물론 벽보가 나붙기가 무섭게 경찰들이 철거하지만. 총파업을 호소하는 내용들이 많다. 우리가 바르샤바를 떠날때만해도 19일 총파업 지령이 내렸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러나 총파업이 예정대로 진행될지는 의문이다.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노동자도 많기 때문이다. 의사의 진단서를 떼어 아프다는 핑계를 대는 조합원이 적지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복잡하다.』(한남자)
『내가 있던 지방에선 4개의 공장이 13일하오 노동자들에게 점거됐다. 어떤 공장에 수천명의 노동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이들은 차례차례로 군대에 의해 퇴거당했으며 공장들이 하나하나씩 군의 수중으로 떨어질때마다 사이렌이 크게 울려퍼졌다. 이런 와중에도 쌍방간에 눈에 띌만한 충돌은 없었다.
아직은 노동자들이 다시 일을 시작할지는 의문이다. 현재 자유노조가 1년전만큼 강력한 것은 아니지만 곧 세력을 구축할수 있을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식량난등으로 불안해 하고 있는 시민들중 일부는 군대에 의해서라도 하루빨리 질서가 회복되기를 바라고 있어 주목된다.』(한남자)
지금까지 당국에 체포된 인사들이 노동자 학생 자유노조지도자 대학교수 기업간부 작가 예술가 언론인 과학자 전직공산당간부등 사회각계각층을 망라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이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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