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경영 손뗀 애경 장영신 회장 '세상경영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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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경그룹 장영신(69) 회장이 지난달 30일 서울제주도민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장학회 설립의 기틀을 마련해 준 공로다. 장 회장과 제주도민회의 인연은 35년 전인 1970년 애경의 창업주이자 장 회장의 남편인 고 채몽인 사장이 타계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 회장은 조의금 전액을 제주도 재경장학회에 기증했다. 장학회는 이 돈으로 지금까지 매년 30명, 모두 1355명의 제주도 출신 대학생을 후원했다.

"제주도는 남편의 고향입니다. 저도 여고 시절 6.25 전쟁으로 학교가 제주도로 옮겨가는 바람에 1년을 산 적이 있고요. 그때 제주도 여성들을 보면서 여성이 얼마나 강한지를 깨달았죠."

애경그룹이 제주도 민간항공 사업에 참여하게 된 것도 이때의 인연이 바탕이 됐다. 하지만 제주 민항사업을 장 회장은 모든 것이 결정되고 나서야 보고를 받았다. 창립 50주년을 맞은 지난해 장남인 채형석(45) 부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준 뒤엔 회사 일에 일절 간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결재도 안 하고 임원회의에도 안 들어갑니다. 회사 돌아가는 일은 아예 얘기도 하지 말라고 했어요. 괜히 임직원들에게 혼선만 줄 테니까요."

부동산.항공.유통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채 부회장의 신경영에 대해 "의사결정이 빠르고 결단력이 있다"며 "'엿장수에게 팔아먹어도 괜찮으니 소신껏 하라'고 주문했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의 국내선 전용 항공사업이 잘 될 것인지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는 "사업이란 하기 나름이며 남들이 안 된다고 해서 안 되는 것도, 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라며 "이제 국내에서도 국내선 전용 항공기가 탄생할 만한 여건이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으로서 처음 경영을 맡은 것도 당시엔 모두 말리던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72년 36세의 나이로 사장이 됐는데 다들 '언제 망하나'했었죠. 지금 와서 돌이켜보는 거지만 사업하는 게 그렇게 어려울 줄 알았으면 절대 안 맡았을 것입니다."

장 회장은 당시 매출 49억원의 작은 비누회사에 불과했던 애경유지공업을 매출 1조4500억 여원에 18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애경그룹으로 성장시켰다. 부도가 나거나 부실해진 계열사도 없었다. 이에 대해 그는 ▶끊임없는 변화하고 ▶신용을 목숨처럼 여기며 ▶모든 것을 앞서 나가려 했던 점을 그 비결로 꼽는다.

"제품을 만들 땐 쓰는 사람의 마음에 딱 들어야 또 찾습니다. 그러려면 연구개발을 굉장히 많이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장 회장은 특히 "뭐를 하든 성공하려면 죽기살기로 해야 한다"며 "황우석 교수 같이 자기 일에 미친 사람이 각 분야에서 나오면 우리나라는 저절로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들어 여성의 사회 참여가 많아지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여자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애 걱정, 반찬 걱정, 청소 걱정을 도맡아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동등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남자들도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학맥.인맥이 부족한 여성들이 정보력에서 뒤처지는 것도 성장하기 어려운 여건이라고 했다. 그가 99년 한국여성경제인협회를 창립하고 여성 기업인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만드는 데 적극 나섰던 것도 이 같은 현실을 바꾸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남녀차별을 탓하기에 앞서 여성 자신들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여성들이 입사 성적은 좋을지 모르지만 실제 업무에선 책임감.자신감.창의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여성 상사를 잘 따르면 나도 출세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야 남자 부하들이 잘 모시고 열심히 일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는 "남자들도 힘들게 살고, 미국 같은 선진국도 여자들이 일하기 쉬운 나라는 아니다"면서 "시키는 일만 잘 해서는 부족하고, 희생양이라는 생각 대신 개척자 정신을 갖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장 회장은 애경복지재단 일에 주력하고 있다. 구로문화원장과 무역협회 부회장직도 맡았다.

"이젠 나 자신을 위한 생활을 즐기려 한다"며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주치의 권유대로 많이 걸으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민병관 산업부장

정리=박혜민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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