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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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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1933년 성당(김경희)의 서세인「상서회」에서 처음 만난 소전(손재형)과는 올여름 그가 세상을 떠날때까지 자별하게 지냈다.
나와 성격은 달랐지만 같은 길을 걸은탓에 남달리 친하게 지냈다. 소전은 서예뿐 아니라 문인화에도 일가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서화골동에 밝아 그가 양정학교 재학시절부터 한다는 수집가로 이름을 떨쳤다. 소전이 학생모자를 쓰고 광화문비각앞에 서있으면 어느새 알아보고 나까마들이 줄을 섰다는 것이다.
소전은 1902년 진도부자의 유복자로 태어나 아버지 얼굴 한번 보지못하고 할아버지 슬하에서 아들겸 손자로 귀엽게 자랐다. 할아버지가 자신의 아흐인「옥전」에서 발전(전)자를 떼어「소전」이라고 지어주었다.
조부에게 글씨공부를 다하고 나서 이게 할아버지 보호를 떠난다는 뜻으로「소전」이라고 고쳤다가 이름인 재형과 관계있는 향기전(전)자를 선택해서 향기의 바탕이라고 「소전」이라 자호했다.
소전은 또 연암(박지원)의 필첩, 단원(김홍도)의 그림, 자하(신위)의 유묵, 추사(김정희)의 필적을 수집한 연유로 「연단자추지실」이란 당호를 가지고 있었다.
소전은 무호(이영복)·이당·청전과도 가까이 지냈다.
서화골동을 수집한 판계로 창낭(장택상)·수정(박병내)·단자(이용문) 와도 교유가 있었다. 치과의사 함석태와는 골동수집관계로 친했고, 조선미술관을 경영하던 오봉빈씨(언론인 오도광씨 부친) 와도 자주 만났다. 사군자룰 잘 치고 서화골동 수집가로 상당한 이름이 있었던 송은(이병직)하고는하고 지냈다.
송은은 마지막 내관이어서 괜찮았지만 생활도 유족했다.
연지동에 가련화란 소실을 두고 있었는데 나와 소전은 가끔 이 집에서 대접도 받고 송강의 수장품도 구경했다.
황련화는 공동주전자에 술을 담아내고 수육과 쇠고기 차돌박이를 구워 주안상에 올렸다. 소전은 송수에게 『당신소실의 솜씨가 너무 좋아 우리가 이집에 자주 오게 된다』고 농을 했다.
소전은 재주도 많은 사람이지만 욕심도 많았다. 인촌(김성수)댁 정원도 소전이 꾸민 것이다. 그는 한동안 서화골동 수집에 빠져있었다.
소전의 이야기를 하면서 삐놓울 수 없는게 국보 1백80호인『세한도』이야기다. 『세한도』는 청나라를 열두번이나 오가며 귀한 책등을 사서 유배지(제주도)로 보내준 문인 이상적의 정성을 생각, 추사가 그에게 그려준 그림이다.
이 그림이 어떤 경로로인지 일제시대 경성제대교수로있던「후지즈까」(등총)의 수중에 들어갔다.
「후지즈까」는 추사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다.
「후지즈까」는 해방1년 앞서 한국에서 수집한 물건들을 챙겨가지고 일본으로 들어갔다. 이걸 알고 소전이 동경으로「후지즈까」교수를 찾아갔다. 2차대전말기여서 동경은 공습이 심했다. 언제폭탄이 떨어질지도 모르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이 난리통에 소전은 「후지즈까」집에 찾아가 인사를 했다. 그는 노령으로 병석에 누워있었다. 소전은 『세한도』를 찾기위해 부근 여관에 진을 치고 매일같이 「후지즈까」집에 들러 문안을 드렸다.
「후지즈까」가 소전의 뜻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한국에 있을때 벌써 소전이 그물건을 넘겨받으려고 여러차례 그를 찾아간 일이 있기때문이다.
1백일깨 되는날 지칠대로 지진 「후지즈까」는 소전을 앉혀놓고 아들을 불렀다.
『내가 죽거든 조선의 손재형에게 아무 댓가도 받지말고 「세한도」를 들려보내라』고 일렀다. 이말을 듣고 소전은 일단 물러나왔지만 동경의 전와속에서 그림이 온전히 남아있을것 같지않아 다시 조석훈안을 계속했다. 1백10일째 되던날 「후지즈까」도 소전의 정섬에 감복했던지 『전화속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여기까지 찾아온 성심을 저버릴수 없어 그냥 주는것이니 부디 잘모셔가라』 고 했다.
이렇게 해서 『세한도』를 얻어온 소전은 귀국하자마자 위창(오세창)에게 달려갔다.
위창이 『세한도』를 펴보고는 눈물을 흘리며, 즉석에서『전와를 무릅쓰고 사지에 가서 우리국보를 찾아왔다』는 내용의 제발을 그림에 써넣었다.
이렇게 찾은 『세한도』를 소전이 국희의원에 출마하면서 선거자금에 쓰려고 개성부자 고 이근태씨에게 잡혔다가 끝내는 되찾지 못하고 웃돈을 더받고 서화 공동 수집가인 역시 개성부호 손세기씨에게 넘기고 말았다.
이뿐만아니라 6·25사변때 무호의 미망인에게 입수한 『세한도』못지않은 『불작난도』도 소전이 아끼고 있다가 정치자금 때문에 내놓은 것이다.
국회의원에 입후보할때도 「외도」라고 내가 그토록 말렸건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소전의 명예욕에는 우경도 손을 들고 만셈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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