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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깔고 앉은 문어 한마리 자꾸만 손이 가는 색다른 궁합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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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호 29면

“2만원 안팎이면 4인 가족의 배가 부르고도(삼겹살로 4인 가족이 배를 채운다고 생각해 보라), 입맛에 따라 ‘후라이드 반, 양념 반’, ‘간장 치킨’,’파닭’, ‘오븐구이’, ‘불닭’을 시킬 수도 있다. 조금 비싼 브랜드 치킨도 있지만 요즘은 세트 치킨인 ‘두 마리 치킨’ 가게도 많아서 양은 걱정할 것 없다. 어른들은 취향에 따라 맥주나 소주를, 아이들은 콜라를 곁들여 먹을 수 있다. 치킨이야말로 끼니-안주-간식의 삼위일체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메뉴, ‘치느님’이다. 다양한 메뉴 고르기도 귀찮다면 한마디만 외치면 된다. ‘반반 무 많이!’ “

이도은 기자의 ‘거기’ <3> 가로수길 문어치킨

몇 달 전 출간된 『대한민국 치킨전』중 이 대목을 읽고 무릎을 쳤다. 딱히 닭고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왜 치킨을 자주 먹나 싶었는데, 그 이유를 조목조목 밝혀놔서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고려한 음식이 바로 치킨인 것이다.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통의 경우에서다. 멤버는 트렌드에 민감한 여자 넷, 장소는 브런치 식당과 디저트 카페가 몰린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시간은 그냥 집에 갈 수 없는 금요일 밤-. 치킨의 삼위일체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모두가 ‘아무데나 좋아’라고 말하지만 ‘특별한 곳을 원해’라는 걸로 이해하는 사람들끼리 갈 곳은 치맥, 그 이상이어야 했다.

서울 신사동 ‘문어 치킨’은 여기에 해법이 될 만하다. 일단 메뉴의 신선함. ‘문어 치킨’이 대체 뭘까 싶어 주문한 메뉴는 바싹 튀긴 치킨 위에 까무잡잡한 문어 한 마리가 올려져 있었다. 문어 치킨은 대구에서 시작된 화제의 메뉴라는데, 강남역을 시작으로 이제 서울 곳곳에서 인기를 끌고있다. 3만2000원이라는 가격의 압박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 일단 3~4명이라면 크게 아까울 일도 아닌 듯싶었다. 한 접시에 치킨과 문어 외에도 웨지 포테이토와 샐러드가 곁들여서 제법 양이 많기 때문이다.

신종 메뉴의 힘은 대단해서 옆자리·앞자리 둘러봐도 테이블마다 문어 치킨만 보였다. 해산물의 신선도나 문어의 씹히는 맛을 중시하는 이들에게는 별로이겠으나, 문어 한 마리를 가위로 쓱쓱 잘라 칠리 등 3종 소스에 찍어 먹는 색다름에 자꾸 손이 갔다. 카푸치노처럼 거품이 올라간 프로즌 맥주는 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골목길과 맞닿은 야외석은 그야말로 왁자지껄한 포장마차나 다를바 없는데(테이블·의자도 편의점 앞에 흔히 보이는 플라스틱 제품들이다) 안주와 술은 프리미엄급이라니-. ‘한 끗’이 다른 치맥은 그런 것이었다.

그날 여자 넷 역시 어렵게 자리를 잡고 나서는 그 성취감에 겨워 자정을 넘기게 됐다. 목소리를 높이는 수다는 끝이 없었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때아닌 단체 사진까지 감행했다. 이 모든 것이 ‘불금’을 함께 보내는 동지애가 아니었나 싶다. 하여 ‘오늘 먹을 치킨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라는 메뉴판의 글귀에 새삼 눈길이 갔다. 상술인 줄 뻔히 알면서도, 어쩐지 그 말이 우리의 자발적이고도 집단적인 유흥을 치킨에 빗댄 것이 아닌가 내심 찔렸으니 말이다.

▶문어치킨: 서울 강남구 신사동 514-4, 02-540-0156, 오후 5시부터 오전 4시까지, 스위트 간장 순살 크리스피 1만8000원, 바삭 오리지널 크런치 치킨 1만7000원, 프로즌 비어 4000원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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