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머할까 하다간 다시 어머니 앞에 앉아|출가한 딸 머리 잘라주시는 마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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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올해 쉰일곱이신 친정어머니는 출가해 서른이 넘은 딸의 머리를 곧잘 잘라주신다.
다큰 자식인데 머리자르는 것까지 어머니의 손을 빈다는 게 죄송한 생각이 들어 미장원에 가서 자르고 오겠다고 할라치면 어머니는 곧 『꼭 돈주고 잘라야만 맛이더냐. 아마 내 솜씨가 모르긴해도 웬만한 미용사보단 나을게다』하시면서 서운한 표정을 지으신다.
눈썰미가 좋으시고 부지러한 어머니는 우리 6남매가 어렸을 때부터 손수 머리를 잘라 주시곤 했다.
나는 익히 보아온 어머니의 솜씨를 아는지라 못이기는체 하고 빗과 가위, 보자기를 꺼내와서 어머니앞에 다소곳이 앉는다.
『이만큼 자르면 되겠니?』 어머니가 거읕을 통해 내게 물으신다. 싹독싹독…. 두어번의 가위질로 머리는 벌써 깔끔하게 단장된다.
결혼한지 7년이나 됐지만 그 흔한 퍼머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남보다 숱이 많고, 더 검은 머리를 뒤로 쓸어넘겨 묶고 다니는 게 마치 나의 트리이드마크처럼 돼버린지 오래다.
얼굴이 큰 편인지라, 보글보글한 퍼머 스타일보다는 이 편이 한결 어울리고 정숙하고 산뜻해보여 나도 마음에 든다.
『요란한 퍼머머리를 보면 정신이 산만해질 지경이야.』항상 밋밋한 생머리로 살아가는 나를 보며 그이는 자연스럽고 개성있다고 부추기지만, 뭐니뭐니해도 아내가 허영심없이 미장원 출입을 안하는 게 고마와서 그러는 것이리라.
평소 이렇게 잘 지내다가도 계절이 바꿜 때 쯤이면 몸살을 앓는다. 퍼머도 한번 해보고 싶고, 처녀적에 즐겨 하던 앞가리마의 단발머리도 해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선듯 용기가 나지 않아 동생들에게 슬쩍 의향을 내비치면 『언닌 그 머리가 제일 잘어울려. 돈도 안들고 일거양득이쟎아』하고 부추기는 통에 결국 할머니가 될때까지 이머리만 할거라고 주저앉고 만다.
정말 이대로라면 오십이 되고, 육십이 넘어 파파할머니가 돼서도 생머리를 하게될지 모를 일이다. 그때까지 어머니는 늙은 딸의 머리를 잘라주실 기력이 있으실지.
아마 모르긴해도 내가 어머니앞에 앉기만하면 언제 그랬느냐는듯 어머니는 기운이 펄펄 나셔서 검은 머리를 곱게 단장해 주시리라.
내일쯤 머리를 잘라야겠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왔니?』하고 반기실 어머니의 자상한 손놀림이 눈에 환하다.
미장원 갈 돈으로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귤을 한보따리 사가지고 가야지.

<서울은평구녹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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