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년형 평년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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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풍년형 평년작-.』
영농의 총책인 고건 농수산부장관이 올해 쌀농사 결과를 두고 요약삼아 한말이다. 생산량 통계로는 평년작이지만 작황으로 봐서는 풍년형이라는 것이다.
알듯하다가도 모를 말이다. 목표량보다 무려 3백만섬이 모자란 것은 접어놓고서라도 평년작 기준에 못 미친 작황을「풍년형」이라니, 그것도 지난해 농수산 통계를 현실화한다면서 평년작기준을 종전의 3천8백만섬에서 3천5백50만섬으로 크게 낮춰 잡았는데도 말이다.
궁금증이 나서 물으면 물을수록 담당관리들은 입을 꼭 다문 채 크게 웃기만 한다.
다 알면서 뭘 그러느냐는 태도다.
『그럼 평년작의 기준산정이 또 잘못됐다는 거요-.』라는 재차 다그침에『지금으로서는 얼마가 평년작인지조차 알 수 없다』는 간단한 대답이다.
그제야 모든 게 명백해졌다. 과거의 통계가 엉터리인데 무엇을 기준으로 평년작을 계산해 내며 기존이 없는 마당에 풍·흉년을 어떻게 구분짓느냐는 것이었다.
농수산부 당국자들도 올해 쌀농사는 최소한 3천7백만섬 정도는 거뜬하리라고 자신했었다는 뒷 고백이다. 각도지사들의 보고대로 한다면 4천만섬까지 기대할 만 했었다니 말이다.
그러나 수확기에 접어들면서 집계되는 추정치는 3천5백만섬 수준임을 예고하고 있었다. 농수산부측도 그건 너무 하다 싶었던지 장관특명으로 두차례나 암행출장을 내려보냈지만 오히려 사실만을 확인시켜줄 뿐이었다.
발표시기를 늦춰가며 아무리 최종숫자를 다시 따져봐도 그 숫자가 그 숫자였다. 올해 농사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결국 과거의 통계숫자가 터무니없이 엉터리였음을 스스로 입증시킬 뿐이었다.
부실통계는 생산력 쪽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1년에 쌀을 얼마나 소비하느냐도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 기존통계로는 l인당 1백34kg인 것으로 되어있지만 이것 역시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농수산부 자신부터 부인하고있는 형편이다.
수요쪽이건 공급쪽이건 어느쪽 하나도 정확한 기준을 갖고 있지 못한 셈이다. 그러니 앞으로의 수급계획이 어떻게 짜여질지 두고볼 일이다.

<이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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